달자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개경 연복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연복사 승려
목차
정의
고려후기 개경 연복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공민왕 때 개경(開京) 연복사(演福寺)를 중심으로 활동한 선종(禪宗) 승려이다.

1367년(공민왕 16) 신돈(辛旽)이 문수회(文殊會)를 열 즈음에 선종 사원인 연복사에 있던 세 못[三池]과 아홉 우물[九井]을 다시 파도록 신돈에게 건의하여 이루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토목 불사는 달자가 신돈에게 이전부터 도참설(圖讖說)을 퍼트렸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달자는 도참설을 인용하며 연복사의 메워진 세 못과 아홉 우물을 뚫는다면 태평성대가 온다고 신돈에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달자가 토목 불사를 신돈에게 건의했다는 점과 문수신앙(文殊信仰)을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달자는 신돈을 지지하였던 승려였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신돈과 그의 시대』(김창현, 푸른역사, 2006)
「고려말 불교의 경향과 문수신앙의 대두」(김창현, 『한국사상사학』23, 2004)
집필자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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