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공민왕 때 개경(開京) 연복사(演福寺)를 중심으로 활동한 선종(禪宗) 승려이다.
1367년(공민왕 16) 신돈(辛旽)이 문수회(文殊會)를 열 즈음에 선종 사원인 연복사에 있던 세 못[三池]과 아홉 우물[九井]을 다시 파도록 신돈에게 건의하여 이루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토목 불사는 달자가 신돈에게 이전부터 도참설(圖讖說)을 퍼트렸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달자는 도참설을 인용하며 연복사의 메워진 세 못과 아홉 우물을 뚫는다면 태평성대가 온다고 신돈에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달자가 토목 불사를 신돈에게 건의했다는 점과 문수신앙(文殊信仰)을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달자는 신돈을 지지하였던 승려였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