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신돈(辛旽)의 측근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죽임을 당한 행주기씨(幸州奇氏) 기현(奇顯)의 동생인 기자수(奇子秀)의 사위이다.
공민왕 때 정방소경(政房少卿)·예부직랑(禮部直郞)을 역임하였다. 한 때 중랑장(中郞將) 하영홍(河永洪)의 봉록을 속여 받다가 감찰사(監察司)의 탄핵을 받았으나, 신돈의 보살핌으로 관직에 다시 나갔다. 1366년(공민왕 15) 9월 국왕이 신돈의 원찰인 낙산사(洛山寺)로 행차하였을 때 신돈의 밀명을 받은 다음, 모니노(牟尼奴: 우왕)가 공민왕의 후사를 이을 수 있도록 하는 축원문을 지어 낙산사의 관음보살(觀音菩薩)에 기원하였다. 1371년 8월 홍영통(洪永通)·김횡(金鈜)·허완(許完) 등과 함께 신돈의 세력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