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일명 이미충(李美忠)이라고도 한다. 공민왕∼우왕 때 상장군(上將軍)·전공판서(典工判書)를 역임하였다. 이미충은 모니노(牟尼奴: 우왕)가 공민왕의 시비(侍婢: 시중드는 여자 종) 반야(般若)의 소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러한 사실을 감추었다. 1371년(공민왕 20) 7월 공민왕과 신돈(辛旽)이 모니노를 원자(元子)에 세우려고 하자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1375년(우왕 원년) 3월 "역신 신돈에게 아첨하여 섬겼고, 내탕금(內帑金)을 맡으면서 출납(出納)을 함부로 하여 횡령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간관의 상소에 의해 전 전공총랑(典工摠郞) 서능준(徐陵俊)과 함께 탄핵되었다. 대간(臺諫)에서 전법사(典法司)의 감옥에 가둘 것을 요청하였지만 이미충은 권신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가벼운 감옥인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 1387년(우왕 13) 3월에는 요동(遼東)지역으로 초운마(初運馬) 1,000필을 몰고 가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