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광회(丹光會)는 1943년 2월, “성전(聖戰)하에서 미술보국에 매진한다”는 취지로 창립되어 일본제국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미술단체이다. 회원은 총 21명으로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가 중심이 되었으며, 일본 화단에서 활약하던 신진 기예자 및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출신인 임응구(林應九), 김인승(金仁承), 김만형(金晩炯), 손응성(孫應星), 심형구(沈亨求), 박영선(朴泳善), 이봉상(李鳳商) 7명의 서양화가가 참여하였다.
1943년 4월 2일부터 7일까지 삼월백화점에서 《제1회 단광회전》을 개최하고 수상작을 발표했는데, 조선인으로는 박영선과 김만형이 장려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전시에 단광회원 19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 제작한 100호 크기의 「조선징병제 실시 기념화」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조선인 징병제 실시 발표에 앞서 제작된 이 그림은 제작 취지를 "이 광영의 제도를 길이 기념하고자 회원 19명이 힘을 합하여 나라에 봉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어 기쁨에 넘친 반도의 한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림 속에는 징병 소집된 조선 청년을 중심으로 소집자를 배웅하는 비행기를 든 소년과 쿠라시케 슈조(倉茂周藏) 소장, 조선해군 무관부 마츠모토 이치로(松本一郎) 대좌, 지원병 훈련소장 우키타 카나메(海田要), 총력연맹 사무총장 하타 시게카즈(波田重一), 경기도 지사 타카야츠 히코(高安彦), 친일파 윤치호 등 실존인물들이 그려있다. 인물 뒤로는 경성부의 풍경과 남산의 신사(神社), 지원병들의 행진, 시민들의 환송장면과 여인들의 천인침(千人針) 제작 장면까지 섬세하게 그려 조선인 징병제 실시를 장려하는 전형적인 친일 작품이다. “근대 반도사의 일면을 반영하는 대단히 큰 감명을 일으킨 역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경성부와 평양에서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 뒤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기증되었다.
일제 말기 자발적인 친일미술인 모임이었던 단광회는 한국인 회원 7명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미술인으로 수록되었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일미술단체이다. 중견 서양화가들로 이루어진 단광회에 가입했던 화가들은 당시 친일 안 한 사람은 실력이 없었다고 하는 상황론과 재능론으로 당시 입장을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박영선의 경우 정치 논리가 미술에 개입하는데 반대하고 순수미술을 옹호하며 우파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특히 김인승은 심형구 등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목우회 등 대한민국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봉상은 미술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던 점에서 한국 현대화단과도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