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의 작품인 「경주의 산곡에서」는 조선 향토색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치 무대 세트장 같은 산기슭에 아이를 업은 소년과 누군가를 기다리듯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있는 소년이 그려져 있다. 앉아있는 소년의 발치에는 신라의 옛 도읍지인 경주를 상징하는 깨진 몇 개의 기왓장과 휜 숟가락이 놓여 있다.
이인성이 경주를 특정한 공간으로 여겼음은 1935년 1월 『신동아』에 발표한 「조선화단의 X광선」에서 “고도(古都)의 산곡(경주에서 힌트를 잡음)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려고 제작 중입니다.”라고 썼으나 조선미술전람회에는 ‘경주의 산곡에서’로 제목을 바꾸어 출품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초목이 다 시든 민둥산을 배경으로 영화로웠던 고도(古都)를 상징하는 첨성대를 바라보는 소년과 깨진 기와를 바라보는 소년의 우울한 시선이 교차하는 이 작품에는 신라의 패망과 상실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건강한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하게 만드는 이러한 회고 취향은 일본에서 초빙된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들이 권장한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향토색에 대해서 비판했던 평자들 대부분이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무조건 하고 예찬한다.”, “사물에 대한 탐구가 깊어 장래가 기대된다.”며 극찬했던 것은 1930년대 화단의 중심 논제였던 조선 향토색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산기슭에 칠한 붉은 색은 바로 흙빛〔赤土〕이다. 이인성은 조선의 풍경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색채를 붉은 흙에서 찾았다. 그가 붉은 흙을 조선의 색채로 인식했음은 1934년 서울의 북한산 일대를 돌면서 쓴 글(이인성, 「鄕土를 찾아서」, 『동아일보』, 1934.9.7)에 “나에게는 적토를 밟는 것이 청신한 안정을 준다. 참으로 고마운 적토의 향기다.”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의 기후나 자연에 의거할 것을 주장한 향토색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1930년대 화단에서 이인성은 조선적인 색채를 붉은 땅과 파란 하늘에서 찾았다. 이 작품은 강렬한 원색의 사용, 치밀한 화면구성, 서정적인 분위기 묘사로 조선 향토색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