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서 조선전기 사이에 궁궐이나 성곽을 짓는데 종사하던 기술자의 우두머리는 대목으로 불렸다. 1448년(세종 30) 서울 숭례문 수리공사의 목수 우두머리인 대목은 정5품 무관 관직에 있는 기술자였으며, 15, 16세기 불교사찰의 전각을 짓는 공사에는 대선사(大禪師) 같은 법계를 지닌 승려 대목이 공사를 주관하였다. 17세기 이후 궁궐을 짓는 공사에는 대목은 사라지고 목수변수, 석수변수 외에 온돌변수, 창호변수 등 직종에 따라 변수가 책임자 역할을 하였으며 이들을 총괄하는 기술자로 도변수라는 호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불교사찰의 경우에는 18세기에 들어와서 역시 대목이 사라지고 도편수가 정착하게 된다.
대목이 관직을 갖거나 법계를 지녔던 것과 달리 도편수는 특별한 사회적 지위 없이 감독관의 지시아래 주어진 부분에서만 그 역할을 하였다. 도편수의 역할 변화는 조선후기 건축이 전체적 통일성이 약해지고 부분적인 가공이 발달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