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계 이산해 유품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집안의 종중 영당에 소장된 이산해 관련 유물 일괄로, 초서 족자 1점을 비롯하여 초서 병풍 목판 6장, 문집 책판 228장 등이다. 2009년 1월 20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일괄 지정되었고, 한산이씨 아계공파 종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초서 족자: 이산해의 친필 초서 족자로 보이나 낙관과 서명이 없다. 그러나 유물이 이산해 종가 소장품이고, 이산해 필체와 일치하며, 기타 일괄유물과 함께 소장된 것으로 보아 이산해의 칠필 초서라 추정된다. 초서족자의 내용은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청고(聽鼓)」를 초서로 쓴 것이다. 크기는 가로 87.5㎝ 세로 119.5㎝이고, 글씨의 서사 시기는 알 수 없다.
초서 병풍 목판: 이산해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초서로 쓴 것을 목판에 판각한 것이다. 목판의 크기는 세로 150㎝, 가로 50㎝, 두께 3㎝ 내외이며, 6장이 모두 잘 보존되었다. 모두 6장이나, 앞뒤 면에 판각을 하였으므로 모두 12면이다. 서사(書寫) 시기와 목판으로 판각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이산해는 당시 초서에 능했다고 하는데, 이 목판은 이산해의 초서 중에서도 보기 드문 대자(大字)로 국가유산의 가치가 높다.
문집 책판: 모두 228장이다. 아계유고(鵝溪遺稿) 130장을 비롯하여 석루집(石樓集) 63장, 석루문집(石樓文集) 25장, 무판심(無版心) 8장, 자암집(自庵集) 1장, 근사록(近思錄) 1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채판이 일괄로 지정되었다.
『아계유고』책판 130장은 기성록(箕城錄; 권13) 63장, 후집(後集; 권4) 21장, 아계집(鵝溪集; 권56) 46장으로 구성되었다. 책판의 크기는 가로 58.5㎝ 세로 25㎝, 두께는 약 5㎝ 내외이다. 책판의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 유계(有界),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며, 광곽의 크기는 21.2㎝×31.5㎝이며 9행 20자이다. 판각 연대는 발문을 지은 최립(崔岦)이 ‘금상공(今相公)’이라 했던 사실에 비추어 이산해가 영의정으로 재임했던 1599년(선조 32)~1600년(선조 33) 사이인 것으로 판단된다. 26판의 경우 책판의 형태나 재질이 달라 일부 후대에 보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집과 아계집의 책판은 이산해의 아들 이경전(李慶全)이 충청관찰사로 재임시에 판각된 것으로, 제작 연대는 1612년(광해군 4) 경으로 추정된다. 『아계집』책판은 『누판고(鏤板考)』에 의하면, 한산이씨의 원찰인 충청남도 예산(禮山) 천방사(天方寺)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780년(정조 4) 경에 종가로 옮겨져 영당에 보관된 것이라 한다.
이산해 종가에는 『아계유고』 외에도 이경전의 문집인 석루집 63장, 석루문집 25장과 무판심 8장, 자암집 1장, 근사록 1장 등도 소장되어 있다. 석루집은 1659년(효종 10) 판각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58㎝, 세로 25㎝, 두께는 5㎝ 내외이다. 광곽 형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 유계(有界),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체는 단정한 해서체로, 광곽 크기는 19.2㎝×30.5㎝이며 9행 19자이다.
현재 보존 상태가 완전한 편이다.
아계 이산해 유품 가운데 책판은 비교적 빠른 시기인 17세기에 제작된 것이고, 초서 병풍 목판은 이산해의 대자 초서를 감상할 수 있어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