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미륵전에서 1789년(정조 13)에 쓰여진 신황사(神皇寺) 용화전(龍華殿) 상량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에는 신황사로 불리웠고 현재의 미륵전 역시 용화전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미륵전의 본존불은 조선시대에는 용화전의 본존불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미륵으로 신앙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은 통견식 착의법에 항마촉지인을 한 작품으로 빈약한 어깨와 볼륨감이 전혀 없는 신체의 표현이 특징인 고려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 불상의 어깨 부분이 특히 부자연스러운데 광배 보수시 불상의 어깨 와 팔 부분에도 호분이나 석고로 보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은 길죽한 신체에 넓은 어깨, 사각진 넓은 무릎에서 안정감있는 비례를 보이며 편단우견에 편삼을 입은 착의법, 항마촉지인의 수인이 특징이다. 이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전기에 걸쳐 유행했던 형식이다. 얼굴은 길죽한 형상에 소발의 육계가 봉긋 솟은 모습이다. 신체에는 통견식의 대의를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에서 팔로 흘러 내린 대의자락이 왼쪽 가슴의 옷과 분리된 점에서 편단우견의 대의를 입은 위에 오른쪽에는 별도의 편삼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전기에 걸쳐 유행했던 형식이다. 오른쪽 가슴에서 왼쪽 어깨위로 균일한 옷주름이 잡혀 있으며 사각진 무릎 밑으로 반원형의 주름이 흘러내렸다. 수인은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려 항마촉지인을 하였으며 왼손은 선정인의 자세를 하였다. 광배는 윗부분이 깨져 있고 전체에 호분과 채색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는 광배를 보수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옛 사진을 참고해 보면 광배의 왼쪽 부분이 많이 깨진 상태인데 보수시 전체 광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향사 석조여래좌상은 조선후기에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이 미륵으로 봉안된 사례이다. 불상은 전체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원래의 불상 위에 석고를 발라 상의 변용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깨어진 광배를 보수하면서 상과의 분리를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상태는 보수로 인해 많이 훼손된 상태지만 착의법이나 수인에서 통일신라 여래좌상 형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은 사례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미륵으로 믿어진 점에서 새로운 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