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법천사 석조 여래 좌상 ( )

양산 법천사 석조여래좌상
양산 법천사 석조여래좌상
조각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천사에 있는 법천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여래좌상.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양산 법천사 석조여래좌상(梁山 法泉寺 石造如來坐像)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0년 03월 11일 지정)
소재지
양산시 동면 금산리 105번지 법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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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천사에 있는 법천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여래좌상.
개설

법천사 석조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석조불상의 재료인 불석(佛石, 제오라이트)으로 조성되었는데, 이 석재는 흰색에 무른 재질이다. 전체 불상의 높이가 81.5㎝에 이르는 제법 큰 규모이며, 최근에 개금하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불상의 밑바닥에는 복장공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개금 수리를 위한 사전조사에서 복장주머니[腹藏囊],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2매, 다라니(陀羅尼) 2매, 오방도(五方圖) 등이 발견되었다.

역사적 변천

통도사의 말사인 양산 법천사에는 사찰 창건에 관한 사적기 등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법천사는 예전에 냉정사(冷井寺)로 불리다가 금수암으로 칭하였고, 이후 다시 법천사의 원래 명칭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내용

법천사 석조여래좌상은 양 다리를 결가부좌하여 등을 곧게 세우고, 머리를 앞으로 숙인 자세이다. 수인은 오른손 손끝을 아래로 하여 땅을 가리켜 촉지하고, 왼손 손바닥을 위로하여 엄지와 중지를 서로 맞대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목이 짧아 움츠린 듯하며, 상체는 왜소한데 비해 다리의 폭은 넓고 하반신이 매우 두껍게 조각되었다. 이처럼 하반신에 비중을 둔 것은 상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신체 비례를 고려한 것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육계는 머리와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나, 그 경계에 반원형의 중간 계주로 구분하였고, 머리 정상에는 높고 큰 정상 계주를 두었다. 이는 1657년 무주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같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승일(勝日)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그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의 특징이기도 한데, 1670년 삼응(三應)이 제작한 김천 봉곡사 석조석가여래좌상과 1674년 성조(性照)가 제작한 함양 백운암 목조여래좌상이 대표적이다.

목과 얼굴은 살이 오른 듯 볼록하고, 다소 밋밋해 보이는 눈은 다른 부위에 비해 오뚝하고 큼직하게 조각되었다. 두껍게 표현된 양쪽 귀는 어깨에 닿아 있는데 석조 조각의 기술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이며,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은 어깨로부터 팔꿈치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양쪽 다리 사이에는 넓은 가운데 옷 주름을 중심으로 양측으로 동일하게 주름을 나누어 펼쳐 놓았으며, 끝단은 부드러운 물결 모양이다. 왼쪽 다리 위에는 무릎 쪽으로 길고 끝이 뽀족한 긴 옷자락이 흘러내렸다. 오른쪽 어깨와 다리 위에 표현된 옷자락과 옷 주름의 표현은 1648년에 제작된 강진 정수사 목조아마타상, 1651년에 제작된 서울 봉은사 목조아미타상 등 승일이 조성한 목조 불상과 매우 비슷하다. 특히 삼응의 작품 김천 봉곡사 석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과 매우 유사한데 크고 넓은 얼굴이나 오른쪽 팔꿈치에서 왼쪽 팔꿈치로 올라가는 대의, 양다리 사이에 표현된 옷주름 등이 닮아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승일파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징

조선 후기의 석조 불상은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 압도적으로 많고, 시기적으로도 17세기 후반에 집중되었다. 석조불상을 조각한 조각승도 겨우 10여 명 정도가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이 불상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승일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김천 봉곡사 석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에 비해 둔탁하고 세련미가 떨어지며, 괴체감이 드러난다. 이로 보아 더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불상은 변형된 편단우견식으로 입은 대의의 착의법을 통해 석가여래좌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불상이 석가여래만을 단독으로 조성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원래는 삼존상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법천사 석조여래좌상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일과 그의 유파까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의 석조불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불교조각연구』(이희정, 세종출판, 2013)
『조선후기불교조각사』(송은석, 사회평론, 2012)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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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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