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호는 일본 율령제에서 특정한 관사에 예속된 수공업자 집단을 가리키는데 다이호료우(大寶令)에서는 모두 1603호가 있었다. 잡호는 조(調)와 역(役)을 면제받고 잡호적(雜戶籍)에 등록되어 기술을 세습하도록 하였다. 일본에서 잡호는 천민이 아니었으나 잡호적에 기재되고 관사(官司)에 직속되었기 때문에 준천민(準賤民) 취급을 받게 되었다.
『니혼쇼키(日本書紀)』에서 오진텐노(應神天皇)과 유랴쿠텐노(雄略天皇) 대에 백제에서 각종 기술자가 도래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기술자의 후예가 율령제 하에서 백제수부와 백제호(百濟戶)로 편성된 것이다.
백제수부는 내장료(內藏寮)와 대장성(大藏省)에 소속하여 무관의 목이 긴 예장용 신발(靴), 문무관의 예복용 신발(履)과 하급병사의 짚신(草履), 안장 등의 수공업 제품의 생산에 종사하였다.
내장료에 10구. 대장성에 10호가 배치되어 장상관(長上官)인 전리(典履)의 지휘를 받았다. 천황에게 바치는 물건을 제작하는 내장료 소속의 사람은 헤이죠 경(平城京) 좌경(左京)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5명씩 두 팀으로 편성되어 교대로 공방(工房)에서 생산에 종사하였다.
대장성 소속의 사람들은 천황이 신하들에게 주는 하사품을 만드는 사람들로 헤이죠 경의 좌경에 8호, 우경에 2호가 거주하였다.
근무는 내장료와 마찬가지로 5명이 한 팀으로 근무하였고 한 달에 두 번 교대 근무하였다. 한 사람이 한 달에 만드는 신발의 양은 16냥으로 정해졌다.
한편 백제호도 내장료에 10호, 대장성에 11호 배치되어 장상관인 전리의 지휘를 받았다. 백제호나 백제수부는 같은 일을 하였지만, 백제수부가 관사에 예속된 사람이라면 백제호는 임시로 근무하는 사람들로 백제수부의 일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