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 ()

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
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격몽편』, 『자양심학지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이칭
용암(龍巖), 운암(雲巖), 지암(止庵), 택지(澤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93년(성종 24)
사망 연도
1562년(명종 17)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경상북도 선산(善山: 지금의 구미시)
주요 관직
진사(進士)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격몽편』, 『자양심학지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자는 택지(澤之)이고, 호는 용암(龍巖)·운암(雲巖)·지암(止庵) 등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경상북도 선산부 해평에서 은거하였으며, 박영(朴英)의 문인이다. 이황(李滉)과도 서신을 통해 학문적 교류를 하였으며, 생활면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입각한 생활을 하였다. 선조 연간에 정려(旌閭)가 하사되었다.

고려 때 도첨의 우정승을 지낸 박화(朴華)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사 박종원(朴宗元)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 허양(許諒)의 딸이다. 초취(初娶)는 김백(金栢)의 딸이고 재취는 김헌(金王+獻)의 딸이다. 경상부 선산부 해평현에서 은거하였고, 박영의 문인으로, 송희규(宋希奎)·송순(宋純)·김취성(金就成) 등과 교유하였다. 1519년(중종 14)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나, 문과 응시를 포기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격몽편(擊蒙編)』, 『자양심학지론(紫陽心學至論)』, 『경행록(景行錄)』, 『삼후전(三侯傳)』, 『위생방(衛生方)』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 가운데 『격몽편』과 『자양심학지론』은 이황에게 산정(刪正)을 부탁하여 후일 문집에 수록되었다. 『격몽편』은 초학자의 성리학 입문서이고, 『자양심학지론』은 주희(朱熹)의 심학(心學)을 정리한 것이다. 평소의 생활은 『주자가례』에 준하였다. 상주가 되어서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고, 삭망(朔望)의 전(奠)은 고조에까지 미쳤으며, 기일(忌日)에는 의관을 희게 하여 곡읍(哭泣)을 예법대로 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580년(선조 13) 정려가 하사되었으며,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고리실에 박운의 효자정려비가 세워졌다. 또한 1646년(인조 24)에 설립되어 1787년(정조 11)에 사액된 낙봉서원(洛峰書院)에 배향되었다. 낙봉서원에는 박운 이외에도 김숙자(金淑滋)·김취성·김취문(金就文)·고응척(高應陟) 등이 배향되었다. 1757년(영조 33) 후손들이 정간(鄭榦)의 서문을 받아 4권 2책의 『용암선생문집』과 5책의 『용암선생별집』을 편차하였고, 1778년(정조 2) 이상정(李象靖)의 발문을 받아 4권 2책의 『용암선생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산집(大山集)』
『송당집(松堂集)』
『여헌집(旅軒集)』
『용암집(龍巖集)』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
디지털구미문화대전(gumi.grandculture.net)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