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192㎝, 가로140㎝. 신화사 소장. 「푸른 전복」은 장우성이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 출품하여 총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전복(戰服)과 벙거지를 착용한 한 여성이 부채를 펴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장우성이 서울 명륜동 4가에 있던 하숙집인 광명관에서 기생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우성은 당시 인기 주제였던 실내의 여성을 그린 인물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사실적 인체와 우아한 색감의 새로운 미인화가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장우성은 자포니즘으로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도 애용했던 근상 위주의 우키요에(浮世繪) 풍속인물화 구성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입체적인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다리와 팔 등에 서양화의 음영법을 두드러지게 활용하였다. 또한 1930년대 후반부터 윤곽선과 옷주름을 원체풍의 고고유사묘(高古遊絲描)와 철선묘를 섞어 나타내고 치마 끝단에 가는 흰 선을 하이라이트처럼 덧대어 그은 분금법을 사용하는 등 신고전주의 사조와 밀착되어 동양의 고전적 기법을 인물화에 다루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1938년 일본 신문부성미술전람회(新文部省美術展覧会)를 관람하고 온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사실적이면서도 명징우미한 신고전주의에 의거한 작품활동을 했던 장우성은 도시적인 신감각과 통일된 색조 구사로 당시 호평을 받았다. 장우성의 작품은 주제 중심의 단순한 배치로 집중적인 구성력을 보여주었다는데 특징이 있다. 인물화에서 이러한 주제 중심의 구도는 그의 탁월한 인체 묘사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기량 면에서 당대 최고의 대가였던 스승 김은호를 능가하였다. 장우성은 「푸른 전복」으로 조선총독상을 수상한 이후 연속 4회 특선으로 당대 화가 최고의 영예인 추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작품은 장우성의 회화적 기량이 절정에 이른 시점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장우성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