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등 세계적인 냉전의 해체 분위기 속에서 문화적 차원으로 남북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1990년대 초반 뉴욕남북영화제 준비가 진행되었다. 신상옥에 따르면 고 김정일 위원장 역시 남북교류에서 문화교류가 제일 먼저 가능한 영역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까지는 한반도 내에서 남북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에 양측이 합의하기 어려웠고, 문화교류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미약해 민간차원에서 먼저 기획되었다. 민간 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진행할 경우, 절차가 간소하고 소규모로도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제1회 남북영화제가 기획된 것이다. 미국동부한국예술인협회 회장 주동진이 당시 북한의 작가동맹위원장인 친형 주동인과 연락하고, 남쪽과도 연결해 최초의 남북영화제가 개최되었다.
뉴욕남북영화제는 1990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미국동부한국예술인협회(회장 주동진) 주관으로 퀸스대학 골든센터에서 한국영화 3편과 북한영화 2편이 선보였다. 한국 측은 「미친 사랑의 노래」, 「코리안 커넥션」,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북한 측은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도라지꽃」을 상영했다. 한국 인사로는 강대선 감독과 이덕화, 장미희 등이, 북한에서는 엄길선, 홍영희, 오미란 등이 참석했다.
영화제가 끝난 후 ‘남북영화교류협력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민간자본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문화교류가 남북한 정치 상황에 연동되면서 남북영화제는 지속되지 못했다. 또 영화가 한 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체제수호에 대해 민감한 북측에서 음악이나 무용과 같은 분야에 비해 영화 교류를 꺼리는 입장이라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다만 한국의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에서 북한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북한영화가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뉴욕남북영화제는 남북이 문화교류차원에서 함께 영화를 상영하고 관람한 최초의 영화제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영화전문가와 실무진이 북한영화와 영화인을 접촉할 기회를 갖게 되어 이후 남북 영화교류에 물꼬를 텄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