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 문수는 노란 담요에 싸여 버려진 갓난아기 선재(오태경)를 발견한 후 넝마를 주우며 아버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어느덧 소년이 된 선재는 아버지가 죽자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화엄경」은 ‘허무처럼 큰 공간은 없다’ 등 9개의 화두로 이루어진 장을 구성하며 불교적 세계관을 영상화한다. 9개의 화두는 각각 화장터 소녀 이련(김혜선)을 비롯해 꿈속의 여인 마니(이혜영), 법운스님(이호재), 장꾼 지호(신현준) 등의 다양한 인물을 통해 선재에게 세상의 이치를 열어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만나게 된 연꽃여인(원미경)에게서 어머니를 느낀 선재는 결국 세상 모두가 어머니이며 자신이 걸어온 길 전체가 깨달음의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 1989), 「아제아제 바라아제」(임권택, 1989),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2003)과 함께 불교영화로 구분되는 장선우의 작품이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춘사영화제, 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제4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는 독창적인 시도를 한 영화에게 수여되는 알프레도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기와 함께 사회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상찬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화적 기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해온 장선우가 이후의 다채로운 행보를 예고하듯 관념적인 서사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를 선보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특히 유영길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촬영이 돋보인다. 정일성과 더불어 유영길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코리언 뉴웨이브의 영상미학을 창조했던 촬영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