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으로 치닫던 무렵, 외딴 곳에 자리 잡은 한 인가에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중년여인(윤정희)이 살고 있다.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바꿔 달며 위태롭게 연명하던 그녀의 집에 다리를 다친 한 노인(장동휘)이 찾아들고 언제 죽음을 맞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살을 섞게 된다. 그러나 둘의 동거에 젊고 건장한 남자(김형일)가 끼어들면서 외딴 집은 또 다른 욕망과 권력이 충돌하는 전쟁터가 되어 무기력한 노인은 사랑방으로 내쳐진다. 위험한 삼각관계 속의 일시적 균형은 가족을 모두 잃은 새댁(신영진)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외딴 집은 욕망을 따르는 세 사람과 상식을 지키려는 새댁 사이의 긴장으로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삶에 대한 욕구와 원초적인 욕망과 뒤섞인 극단적 상황은 두 남자와 새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성의 몰락을 애도하듯이 화염에 싸인 외딴 집, 살아남은 중년여인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양손에 쥐고 뛰쳐나온다.
「변강쇠」 시리즈로 향토적 에로티시즘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던 엄종선의 대표작이다. 만무방의 의미처럼 예의와 염치가 없는 뻔뻔한 사람들의 적나라한 욕망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배경을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제시함으로써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수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마치 연극무대와도 같이 폐쇄적인 외딴 집은 윤정희와 장동휘의 원숙한 연기, 김형일과 신영진의 다소 미숙하지만 날것의 느낌이 살아 있는 표정을 통해 평상시에는 숨겨져 있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는 기괴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국내영화제는 물론 40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장동휘), 포트 로더데일 국제영화제와 마이애미 폴라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