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양반가의 딸 길례(원미경)는 가난 때문에 김진사의 죽은 아들과 혼례를 올린다. 열녀문을 하사받을 시부모의 욕심 속에서도 성숙한 여인으로 자란 길례는 김진사집에 머물던 조카 한생에게 겁탈 당한 후 성에 눈뜨게 된다. 사실을 알게 된 시부모에게 쫓겨난 길례는 채진사집 종 윤보(신일룡)와 부부의 연을 맺고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채진사 역시 길례를 탐하자 윤보는 그를 살해하고 둘은 도망길에 오른다. 이후 멸족된 윤보의 가문이 복권되어 누리게 된 행복도 잠시, 길례는 또 다시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가 윤보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부모의 강요로 씨내림을 받고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었지만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는 윤보는 길례에게 은장도를 내밀고 결국 그녀는 자결로서 한 많은 생을 마친다.
1970년대 액션오락영화로 주가를 올리던 이두용이 토속적 샤머니즘과 에로티시즘을 결합시켜 주목 받았던 「피막」(1980)에 이어 여성을 전면에 두고 시대적 모순을 재현한 영화이다. 죽음조차도 강요받았던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이두용의 시선이 상업적 에로티시즘과 타협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은 아직 낯설었으며 성애영화가 양산되었던 당대적 환경에서 대중에게 소구 가능한 지점을 발견한 것이 이 영화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는 한국적 로컬리티가 담긴 영화로 받아들여져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었으며, 시카고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했다. 제목인 ‘여인잔혹사’는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일종의 담론으로 자리잡기도 했는데 「씨받이」(임권택, 1986) 역시 이러한 한맺힌 여성의 담론을 구성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