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155㎝. 대좌와 불신(佛身), 광배(光背)를 모두 하나의 돌을 이용해 조각한 석조여래입상이다. 약함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로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해 고려 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원래 쌍용사지(雙龍寺址)로 불리던 절터에 있었으나, 1980년경 일대가 광산으로 개발되면서 현재의 서곡정사로 옮겨온 것이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대좌와 불신(佛身), 광배(光背)를 모두 하나의 돌로 조각해 만든 입상(立像)의 형태로, 왼손으로는 약함(藥函)을 받치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위가 뾰족한 키 형태의 광배에는 별다른 문양이나 장식이 남아 있지 않다. 안쪽으로 두광과 신광을 각각 조각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마모로 인해 구체적인 것은 확인할 수 없다. 가운데 부분이 움푹 들어간 형태의 2단으로 이뤄진 대좌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조각했는데, 위쪽의 앙련은 마모가 심한 편이다.
입상의 전체적인 비례는 좋은 편이다. 그리고 소발(素髮)의 머리에 가운데에는 육계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둥근 형태로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한데, 눈과 코를 비롯해 입 부분이 마모되어 세부적인 표현은 확인되지 않는다. 귀는 큰 편으로 어깨까지 내려왔다.
착의법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두툼하게 옷주름을 표현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두꺼운 옷주름은 가슴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U자 형태로 흘러내리고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을 도식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했다. 오른손은 허벅지 부분까지 내렸고, 왼손에는 둥근 형태의 약함을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은 불신(佛身)과 광배, 소발의 머리와 높고 큰 육계, 마모가 되긴 했지만 양감이 풍부한 얼굴 표현 등이 특징이다. 특히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에 약함을 든 약사여래입상의 도상은 삼척 천은사 소장의 통일신라 금동약사여래입상 등에서 확인되며, 용인 호암미술관의 출토지 불명 석조약사여래입상도 같은 도상을 취한다. 통일신라 도상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된 고려 전기의 석조약사여래입상으로 볼 수 있다.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약함(藥函)을 통해 약사여래를 조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 약사여래입상의 도상과 옷주름 표현 등 양식적 특징을 계승하고 있으며 옷주름이 도식화되는 고려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