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3㎝, 가로 182.5㎝. 1893년 과천 관악산 화장사(현 호국지장사)에 봉안되었던 지장시왕도로서,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근대 불화승인 금호당 약효(若效)가 수화사(首畵師)로 조성하였다. 지장보살삼존을 중심으로 시왕과 판관, 사자, 6보살, 옥졸, 선악동자 등 40여 명에 가까운 많은 군속들을 묘사하였다.
지장보살은 상단 중심부에 주위의 권속들을 압도하듯 크게 묘사되었다. 높은 불단 위 청련대좌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은 오른손은 가슴 위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구슬을 들고 있다. 얼굴은 이마 위쪽이 넓어서 거의 방형(方形)에 가까운 편이며, 이목구비가 아주 작게 묘사되었다. 머리에는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흑갑사의 두건을 쓰고 있는데, 양쪽 귀 뒤로 화려한 두건 장식이 보인다.
보살의 대좌 아래에는 녹색의 두광을 두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합장을 하고 마주 서있으며, 좌우에는 시왕을 비롯한 많은 권속들이 거의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권속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표현되어 중앙의 본존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동시에 지장보살상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시왕들은 새 깃털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는 제10오도전륜대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복에 관을 쓰고 합장을 하거나 홀(笏)을 들었는데, 서로 마주보기도 하고 머리에 손을 올리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향우측에 3구, 향좌측에 4구 등 모두 7구의 보살이 본존을 향해 합장하고 나란히 서있는데, 이것은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 나오는 육광보살(六光菩薩)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왜 7구의 보살로 묘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청색 및 주황색 등이 자주 사용된 점, 지장보살의 신광이 광선문으로 처리된 점, 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식의 간결한 옷주름 표현, 보라색에 가까운 남색 활용이 두드러진 점 등 19세기 후반의 불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화기에 “광서십구년계사삼월십오일경기좌도과천관악산화장사(光緖十九年癸巳三月十五日京畿左道果川冠岳山華藏寺)”라고 명기되어 있어 1893년(고종 30)에 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당시의 행정구역과 지장사의 옛 이름이 화장사였음을 전하고 있는 등 지장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은 작품이다. 또 화기에는 1893년에 이루어진 지장사의 불사(佛事) 내역을 기록하고 있으며, 감로도를 그린 마곡사의 화승 금호당 약효(若效)가 수화사(首畵師)로 참여한 그림임을 전하고 있다
마곡사의 화승 금호당 약효(若效)가 수화사(首畵師)로 제작한 지장시왕도로, 여백 없이 가득 찬 인물의 표현이라든가 광배(光背)의 오색광선, 도식적인 천의(天衣), 청색과 주황색의 사용 등에서 19세기 불화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