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45.6㎝, 가로 189.5㎝. 상궁의 발원으로 제작된 팔상도로서,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하였다. 팔상의 각 장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취하여 한 폭의 화면에 압축하여 그렸다. 각 상 사이에는 화기란이 마련되어 있으나 하단에 일부 시주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제외하고 조성 연대라든가 조성 화원 등을 적은 화기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화장사 괘불도에 팔상도도 함께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01년에 괘불도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단으로 나눈 화면의 상단 향우측에서부터 향좌측으로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의 제1상제4상을, 하단 향우측에서부터 향좌측으로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제5상제8상까지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화면분할식 팔상도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걸쳐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성행하였는데, 비교적 큰 화면에 18세기 팔상도와 유사한 도상을 그려 넣은 개운사 팔상도(1883년)나 경국사 팔상도(1887년)에 비하여 장면들이 다수 생략되었다. 각 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화면 상단에는 7여래가 합장한 모습으로 구름 위에 앉아있고, 그 아래에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여러 천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큼직하게 배치되었다. 화면 향좌측에는 입태전(入胎殿)으로 추정되는 건물 일부가 보이며 향우측 아래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그려져 있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동산에서 석가가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태자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장면과 구룡(九龍)이 태자를 씻겨주는 장면이 배치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마야부인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고 있으며 시녀들이 출산을 돕고 있다. 그 옆으로는 사천왕이 합장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상단에는 구름 속에서 구룡이 물을 뿜어 태자를 씻기는 장면이 있는데, 태자가 왼손을 들고 있어 ‘사방 일곱 걸음을 걷고 왼손으로 하늘,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쳤다.’는 장면을 함께 결합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였다. 각 장면들은 고목과 건물 등을 경계로 구분하여 표현되었다. 화면의 중간 부분의 향우측에는 동문으로 나간 태자가 노인을 보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늙고 추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배치되었으며, 그 아래는 남문으로 나간 태자가 병자를 보고 육신의 고통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 배치되었다. 하단 향좌측에는 원래 서문으로 나간 태자가 장례 행렬을 보고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 그려져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성문만 표현되었다. 상단에는 북문으로 나간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태자가 궁궐을 떠나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화면 중앙에는 말을 타고 성을 출가하려는 태자,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천왕이 각각 말의 발을 잡고 있는 장면이 중점적으로 그려졌다. 아래에는 태자와 한 여인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태자의 출가를 만류하는 태자비와의 이별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출가 후 설산으로 들어가 수행하는 장면으로, 산속에서 태자가 다섯 비구와 마주 앉은 장면만을 그렸다. 이 장면은 정각을 이룬 석가모니가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 등 5비구에게 설법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원래 녹원전법상에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에서는 유성출가상 다음에 그려져 있어 도상에서 착오가 보인다. 설법하는 석가모니 주위에 사슴이 그려져 있어 이곳이 녹야원, 즉 사르나드임을 알 수 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석가가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金剛寶座) 위에 결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자 석가의 성도에 위협을 느낀 마왕(魔王) 파순이 여러 가지 비술로 방해하는 모습과 석가모니가 마군들을 항복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하단에는 석가와 마군이 병 움직이기 내기를 하는 모습, 상단에는 마군의 방해를 물리치고 정각을 이룬 부처님에게 마군들이 엎드려 빌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석가가 정각을 이룬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 하는 장면으로, 화엄대법을 설하는 모습만을 묘사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석가모니가 두 손을 벌리고 화엄대법을 설하는 장면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으며 상단에는 시방제불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 좌우와 하단에는 보살과 제자, 사천왕 등이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석가가 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든 모습을 그렸다. 하단에는 사라쌍수 아래 침상 위에 오른팔을 베고 누워 열반에 든 석가모니와 스승의 열반 소식을 듣고 모여든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 상단에는 관에 불을 붙이는 장면과 활활 타오르는 관 속에서 사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9세기 말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성행한 화면분할식 팔상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작은 크기의 화면에 팔상을 나누어 도해하였기 때문에 각 상에서 중심 주제로 부각되는 도상만을 취사 · 선택하여 묘사하였다. 각 존상(尊像)의 형식적인 형태, 탁한 색조, 어둡고 탁한 군청색의 채색 등은 19세기 말 불화(佛畵)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