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467㎝, 가로 269㎝. 제작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774년 3월 21일 ‘영산탱(靈山幀)’을 중수하여 원통암(圓通庵)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화기에 전한다. 중앙에 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을 두고 그 좌측에는 보관을 쓰고 영락으로 신체를 장엄한 보살형의 노사나불을, 우측에는 석가모니불을 도해하였다. 이후의 삼신불도가 여래형의 삼신불을 도해한 것에 비해 보살형의 노사나불 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작례이다.
야외 의식용으로 조성된 18세기의 다른 괘불도에 비해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존상의 배치와 화면의 요소가 실제보다 화면이 커 보이는 효과를 낸다. 삼신불은 머리와 상체의 비율에 비해 몸이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두광(頭光)의 위쪽에는 채색 구름을 두었다. 신체를 따라 길게 뻗어나간 옷주름과 하단으로 내려오는 법의 자락 역시 인물의 세장한 인상을 강조한다.
삼신불이 입상의 형식으로 배치된 18세기의 괘불도로는 1735년 남양주 봉선사 괘불도를 제외하면 유일한 예이다. 비로자나불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노사나불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바깥으로 벌려 설법인(說法印)을 취하였다. 석가모니불의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모습으로 가슴 앞에 들고 오른 팔을 내리고 서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은 통견과 편단우견이라는 착의법, 크기, 수인을 차등 있게 표현하여 구별하였다. 육계는 비교적 높은 편으로 중앙에는 주홍색으로 편평한 계주를 표현하고 정상부에는 백색으로 원형의 계주를 나타냈다. 이마가 넓은 얼굴형에 이목구비는 가는 선조로 나타냈으며 머리카락의 윤곽, 수염과 눈썹은 밝은 녹색으로 표현하였다.
학람사 괘불도는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면서 하늘의 표현, 여래의 법의, 하단부의 바탕에는 연녹색이 채색되었다. 옷주름은 연녹과 청색조에 먹을 더하여 음영 효과를 나타냈으며 법의의 외연부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대의의 외연에는 분홍, 주홍, 청색조에 백색을 더하여 화문을 시문하였다.
화기에는 영산탱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도상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입상이 도해되어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영산탱은 석가모니불이 인도의 기사굴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탱을 축약하여 부르던 명칭이다. 영산탱은 도해된 주제를 뜻하는 의미 이외에 영산회 의식용 불화라는 또 다른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불보살단에 대한 의례는 영산회(靈山會), 영산작법(靈山作法)이란 절차로 진행되었고, 영산회에 사용되는 불화 역시 영산회탱으로 명명되었다.
화기에는 중수했을 때의 기록이 확인되는데, 불화를 그린 승려를 양공(良工)과 화사(畵師)로 적었다. 기록의 순서는 양공에 이어 화사가 등장하는데, 불화를 처음 조성했던 승려는 화사, 중수에 참여한 이는 양공으로 구분하였다. 화사(畵師)로는 수화승 초흠(楚欽)을 비롯하여 칠혜(七惠), 태운(泰云), 순경(順敬), 덕순(德淳), 시명(是明), 인위(印位), 성운(性云) 등 8인이 기재되어 있다. 이 중 칠혜와 태운은 1735년 각총(覺聰)이 봉선사 괘불을 조성할 때 함께 작업하였다.
학림사 괘불은 18세기 중엽 경 조성되어 1774년 새롭게 중수되었다. 양공은 처징(處澄), 원유(圓有), 보행(普行)의 세 승려로, 중수의 범위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수를 담당한 화승 처징은 각총의 봉선사 괘불도 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1758년 각총이 여주 신륵사 삼장보살도를 그릴 때 함께 작업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774년 학림사 괘불을 중수한 후 1788년에는 수화승 경환(敬還)과 상주 남장사 괘불도에 참여했으며 1790년에는 상겸(尙謙)과 용주사 감로도를 그렸다. 대체로 18세기 중반 경기도를 중심으로 행적이 확인되는데 1788년 남장사 괘불도를 조성하면서 남긴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에는 서울[京]에서 온 화승으로, 1801년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양주목(楊洲牧) 승려로 기재되었다.
학림사 괘불도는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에 성행하였던 삼신불 괘불도의 선행 사례이다. 그러나 1832년 서울 흥천사(興天寺) 괘불도, 1868년 서울 백련사(白蓮寺) 괘불도와 같이 삼신불을 주제로 한 괘불도의 경우 노사나불이 여래형으로 나타나는 것에 비해 학림사 괘불도는 봉선사 괘불도를 이어 17~18세기에 조성되던 삼신불 도상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