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국사 현왕도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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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국사 현왕도
서울 수국사 현왕도
회화
유물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20세기 초 현왕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수국사 현왕도(守國寺 現王圖)
분류
유물/불교회화/사경화/사경화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07년 12월 2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견지동,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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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20세기 초 현왕도.
개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50.8㎝, 가로 248.3㎝. 삼각산 수국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현왕도로, 지옥의 일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 중 하나인 염라왕을 그렸다. 1907년 수국사의 중창주인 월초 거연(月初 巨淵, 1858~1934)이 모연을 맡았으며 강재희(姜在喜)가 대시주자로 참여하였다. 화기에는 대황제폐하(大皇帝陛下), 황태자(皇太子)와 황태자비(皇太子妃), 황귀비 엄씨(皇貴妃嚴氏), 의친왕(義親王)과 의친왕비(義親王妃), 영친왕(英親王) 등 황실 인물의 성수를 기원하였다. 1907년 수국사에서는 대웅전 상단탱(上壇幀)과 대료(大寮)의 상단탱(上壇幀), 영산탱(靈山幀), 독성탱(獨聖幀), 칠성탱(七星幀), 구품탱(九品幀), 중단탱(中壇幀), 감로탱(甘露幀), 산신탱(山神幀), 신중탱(神衆幀), 현왕탱(現王幀), 조왕탱(竈王幀) 등 13점을 조성하였는데 현왕도는 당시 불사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염라왕(閻羅王 또는 閻魔王)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로 죽음을 경험한 ‘야마(Yama)’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인도의 야마는 불교에 유입된 후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다섯 번째 왕인 염라왕이 되었다. 염라왕은 보통 열 명의 지옥 왕을 그린 불화인 시왕도[十王圖] 중 하나로 그려지나, 조선 후기에는 염라왕을 단독으로 그린 현왕도가 조성되었다. 현왕(賢王, 現王)은 염라왕의 다른 이름으로, 염라왕이 지장보살의 화신이며 미래에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라는 이름의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 현왕 신앙은 사후 받아야 하는 열 번의 심판을 대신하여 3일 만에 영혼을 구제해주는 신속한 구제력으로 인해 인기를 누렸다.

수국사 현왕도는 19세기 말 경기 지역에서 유행하였던 현왕도에 비해 가로로 확대된 화면에 많은 권속이 등장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중앙에는 머리에 경책을 얹고 오른쪽을 향해 자세를 튼 현왕을 중심으로 대륜성왕(大輪聖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좌우측에서 보필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두루마리를 받쳐 든 판관이 있다. 통상적인 현왕도에 비해 도해된 인물이 많고 판관, 녹사 이외에도 시왕도에 등장하는 귀왕이나 옥졸이 추가되었다. 상단에는 산개, 당, 부채를 든 동자가 배치되었다. 현왕의 앞에는 붓과 벼루, 복숭아 모양의 연적과 화엄경(華嚴經) 등이 놓인 탁자가 있다. 문방구류와 경책의 묘사는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조선 말기의 현왕도의 흐름과 상통하는데 전체적으로 화면에서 적색의 비중이 크며 현왕의 의자와 인물의 옷에 금니 채색을 더해 화려한 인상을 준다.

수국사 현왕도를 그린 수화승 보암 긍법(普庵 肯法)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화승으로 많은 수의 불화가 전한다. 수화승으로 독립하기 이전에는 동호 진철(東昊 震徹), 경선 응석(慶船 應釋), 금곡 영환(金谷 永環), 학허 석운(鶴虛 石雲), 혜산 축연(蕙山 竺衍) 등 대표적인 화승들과 함께 작업하였다. 동호 진철이 수화승을 맡았던 1881년 강화 전등사 현왕도, 응석의 1883년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 수화승 기형이 그린 1884년 예천 용문사 시왕도와 신중도, 석운이 수화승을 맡은 1887년 서울 미타사 감로도와 칠성도를 비롯하여 1888년 강화 백련사 칠성도와 신중도, 1890년 서울 흥천사 아미타불회도와 신중도 등의 작례에서 보조 화승으로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불화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울 · 경기 지역의 불화 양식과 공유하는 요소가 많은데, 수국사 현왕도의 경우는 가로로 긴 확장된 구성에 맞게 기존의 밑그림을 변화시키고 중앙의 보현왕여래를 중심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에 인물의 동세를 가해 율동감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수국사 현왕도는 그의 말년기의 기량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서울의 사찰불화』Ⅰ(서울역사박물관, 2007)
「조선 후기 명계불화 현왕도 연구」(김윤희, 『미술사학연구』270, 한국미술사학회, 2011)
「봉안 공간과 의례의 관점에서 본 조선시대 현왕도 연구」(정명희, 『미술자료』78, 국립중앙박물관, 2009)
「조선말기 왕실발원 불사와 수국사 불화」(김정희, 『강좌미술사』30, 한국미술사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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