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686㎝, 가로 394.5㎝. 1886년 당시 광주부(廣州府)에 소속되었던 수도산 봉은사의 야외 의식용 괘불도이다. 봉은사 괘불도는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배치했으며 하단에는 동자형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승물(乘物)을 탄 모습으로 도해되었다. 이러한 석가오존도는 19세기 말부터 유행하는데, 봉은사 괘불도는 이른 시기의 석가오존도 작례에 해당된다. 이 불화 제작에 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인 영명 천기(影明 天機)와 대허 체훈(大虛 體訓)이 함께 참여한 사례로도 중요하다. 화기에는 괘불도의 제작에 소요된 일시를 기입했는데, 즉 1886년 5월 26일에 시작하여 6월 5일에 점안(點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과 가섭존자 · 아난존자가 협시하는 삼존의 구성에, 하단에는 황색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동자형으로 나타난다. 화면 상부의 도상이나 구성은 1879년 개운사 괘불도와 유사한데, 화염문과 능형으로 장식된 두광과 신광, 채운의 표현에서도 일치하는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문수 · 보현보살을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동자형에 승물에 탄 모습으로 나타낸 점은 19세기 전반부터 유행한 구성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도상은 괘불도의 경우 1832년 서울 흥천사 괘불도에서부터 확인되며 1882년 안양암 괘불도, 1901년 지장사 괘불도, 1902년 흥국사 괘불도 등 20세기에 초에 이르기까지 서울 · 경기 지역의 괘불도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문수 · 보현보살은 황색의 배경에 주홍색조의 구름을 배경으로 나타나는데 승물 위에 반가자세로 앉아 있다. 연꽃을 든 문수보살은 청색, 적색, 녹색조로 영기(靈氣)를 표현한 황색 사자 위에 앉아 있다. 보현보살은 연꽃이 아닌 모란꽃을 들고 있으며 코를 높이 든 흰색 코끼리 위에 앉아 있다. 봉은사 괘불도는 석가모니불과 두 제자의 표현이 특징적인데, 즉 얼굴에 비해 몸체의 비율이 과장되게 커지고 부피감이 강조되어 어색한 인상이다.
봉은사 괘불도에 사용된 군청색은 넓은 면적에 시문된 짙은 적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법의를 비롯한 넓은 면에 군청과 적색,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금니 원문을 옷주름의 굴곡을 따라 표현했다. 본존의 육신부는 황색조로 강조하고 신광에는 금니로 채색하였다. 가섭존자를 표현할 때는 먹을 더하여 얼굴과 목의 주름을 나타내고 입체감을 부여했다.
수화승인 영명 천기와 밑그림을 그린 대허 체훈, 만파 돈조(萬波 頓照)는 경선당 응석이 수화승을 맡은 개운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했었다. 대허 체훈이 밑그림을 그리는데 개운사 괘불도에서의 작업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 괘불도는 19세기 말 유행했던 오존도의 구성으로 인물의 신체를 거대하게 괴체감 있게 표현한 점이 특징적이다. 대시주자로 기록된 이는 순화궁 김씨(順和宮 金氏, 1831~1907)로 그녀는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憲宗)의 후궁 경빈 김씨(慶嬪金氏)이다. 또한 시주자를 모으는 인권(引勸)의 역할도 상궁(尙宮)이 위주가 되었는데, 19세기 새로운 후원 세력으로 대두된 비빈과 상궁 발원의 불화로 주목되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