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상과 문화를 폭넓게 연구함으로써 현대 인류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여 건전한 인격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나아가 민족문화의 부흥을 통해 인류평화에 기여하고자한다’고 하였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동양의 정신문화를 멸식하는 택멸목(澤滅木)의 대과(大過)시대임을 예견하고 동양의 정신문화를 부흥시키고자, 『주역(周易)』과 ‘홍범(洪範)’을 근간으로, 이달이 1946년에 조직한 홍역학창립기성회(洪易學創立期成會)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달은 1889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향리의 서당에서 수학하였고, 독학으로 유학 경전[儒經]을 비롯하여 도교와 불교 등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특히 『주역』에 통달하여 ‘주역의 달인’, ‘주역의 종장’으로 불렀다.
해방된후에는 대둔산 석천암에서 『주역』을 개강하고 홍역학회를 창립하였는데, 통강한 제자가 108명, 전체 회원이 1만 2천명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태극지하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종교의 화합을 통해 민족통일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후에는 부여 은산에서 삼일학원(三一學院)을 운영했고, 단황단(檀皇壇)을 설단(設壇: 실전된 조상의 혼령을 모실 수 있도록 제단을 설치)하였다. 이후에는 국조 단군을 받들며 홍익사상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다가, 1958년 사망했다.
주요사업은 ① 유·불·선을 비롯한 민족정신문화연구 및 개발보급, ② 인성개발을 위한 사회교육, 학술서적 발간, 학술발표회 개최 등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대산주역강의』 1~3권과 『주역정문』등 수십 권의 서적을 발간하고,강의테이프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이달의 제자인 김석진(金碩鎭)이 이를 계승하여 1987년에 다시 홍역학회를 창설 및 운영하였다. 1998년 부여 청마산에 이달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2000년에는 한국홍역학회 창립총회(초대회장 김석진)를 열어 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가 출범하였다.
2008년에는 2대회장 이응문이 취임하여 11월에 ‘야산 이달선생 서거 50주년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대전·전주·대구 등 10여 곳에 지회를 두고 있으며, 부설 연구기관으로 홍역학연구소(소장 이애주)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