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통고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조현소가 명나라와 조선의 역사를 편년체로 함께 서술한 역사서.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조현소가 명나라와 조선의 역사를 편년체로 함께 서술한 역사서.
개설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스승이자 금구현령(金溝縣令)을 지낸 조현소(趙見素, 1611~1677)가 중국과 조선의 자료들을 이용해서 명나라와 조선의 역사를 함께 담은 편년체 사서이다.

편찬/발간 경위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발문에 따르면, 조현소는 세상에서 유행하는 야사(野史)들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과 지식인들이 당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중국의『황명통기(皇明通記)』와 조선의 『고사촬요(攷事撮要)』 및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이용하여 명나라와 조선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명나라의 시기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의 아내와 딸이 병자호란 중에 자결하였던 사정을 감안할 때, 명나라의 멸망에 따른 비애감과 결부된 대명의리 관념이 저술의 주요한 동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세채의 발문이 1685년에 작성된 것으로 볼 때, 간행은 그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규장각에 필사본만 전하고 있어서 실제로 간행되었는지는알 수 없다.

서지적 사항

6책. 필사본. 권말에는 박세채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1962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판본도 있는데, 여기에는 9대손 조동진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명나라가 건국된 1368년(공민왕 17)부터 멸망 직후인 1645년(인조 23)까지 명나라와 조선의 역사를 연도별로 나란히 서술하였다. 명나라의 역사를 위에 적고, 아래에는 공민왕 17년 이후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적었다. 가장 많이 서술된 부분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13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 인조가 청나라에게 항복한 1637년, 명나라가 멸망한 1644년 등이다.

의의와 평가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나란히 기술하는 형식은 고려시대의 『제왕운기』로부터 시작되어 조선 초기의 『동국세년가(東國歲年歌)』로 이어지는 전통이 있었다. 본서 역시 이러한 전통 위에 있었지만, 서술 기간이 철저하게 명나라의 건국과 멸망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역사에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 지배층들의 대명의리관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참고문헌

『기년통고(紀年通攷)』
『남계집(南溪集)』
『서파집(西坡集)』
『순암집(順菴集)』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국역)기년통고』 건·곤(조현소 편저, 조남권 역,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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