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제왕전세지도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박율이 요임금부터 명나라까지의 중국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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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박율이 요임금부터 명나라까지의 중국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한 역사서.
개설

은산현감(殷山縣監)을 지낸 박율(朴繘, 1621∼?)이 요임금부터 명나라까지의 중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한 역사서이다.

편찬/발간 경위

아들인 박두세(朴斗世, 1650∼1733)의 발문에 따르면, 박율이 생존하던 1660년에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목판이 깎여나가거나 이지러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였고, 또한 초판이 너무 크게 간행되어서 생긴 불편함 때문에 1702년에 축소하여 다시 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1책. 목판본. 1702년 판본에는 최석항(崔錫恒, 1654∼1724)의 서문이 맨 앞에, 그리고 권말에 범례와 아들 박두세가 1701년에 쓴 발문이 수록되었으나, 규장각 소장의 1660년 판본에는 서문과 발문 모두 없고, 범례만 권말에 수록되었다.

내용

요(堯)임금 원년 갑진(甲辰)부터 명(明)나라 숭정제 16년 계미(癸未)까지 중국 역대 제왕의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자치통감강목』에서 드러나는 주희의 정통론에 입각해서 중국사의 요점만을 간단하게 정리하였다. 주목되는 부분은 명나라가 멸망하기 바로 전(前) 해인 1643년까지는 연표 형식으로 기록하고, 그 뒤에 명나라가 멸망한 사실을 별도의 설명으로 첨가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명나라 멸망에 따른 비애감과 결부된 대명의리 관념이 주요한 동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더불어 삼국시대 이후의 한국사 연표도 해당 연도마다 작게 첨가하였는데, 신라 혁거세 원년부터 수록하였고, 그 이전의 역사인 삼한과 고조선의 역사는 고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기록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1644년 명·청교체 이후, 조선의 지배층은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이런 초유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사상적인 모색을 시도하였다. 특히, 명나라가 멸망한 직후에는 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조만간 명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중화회복의식을 견지하면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관념을 고수하였다. 본서도 이러한 조선 지배층의 대명의리 관념을 일정하게 반영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사까지 포괄하였다는 점에서 비록 형식과 비중은 다르지만, 같은 시기에 편찬된 정극후의 『제왕역년통고』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참고문헌

『역대제왕전세지도(歷代帝王傳世之圖)』
『양파유고(陽坡遺稿)』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17세기 중·후반 중화회복의식의 전개와 역사인식의 변화」(허태용, 『한국사연구』13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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