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려체로 쓰인 작품으로, 11구가 대우(對偶)를 이루고 있다. 변려문의 특성은 고사 인용을 많이 하고 수사에 치우치는 것이 특징이지만, 황신의 서해문은 어려운 고사 인용이 전혀 없으며 꾸밈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황신(黃愼, 1562~1617)의 자는 사숙(思叔), 호는 추포(秋浦), 본관은 창원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8년(선조 21) 알성시에 급제한 뒤 감찰을 비롯해 정언 등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웅천(熊川)의 일본군 진영에 2차례 파견된 바 있으며, 1596년에는 통신사로 파견되었다.
「서해문」은 황신이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 작성된 글이다. 1596년(선조 29) 8월 통신사로 임명되어 일본 본토로 가던 중 대마도와 일기도 사이의 바다에서 바람과 파도를 만나 배가 거의 뒤집히는 상황에서 지은 것으로, 「서해문」을 지어 바다의 신에게 고하고 제사를 드리자 바람과 파도가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글의 내용을 보면, 먼저 “늑대와 범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이미 2년을 지켰는데”라며 앞서 2년 동안 일본군 병영에 왕래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또 다시 몸을 바칠 각오로 통신사의 임무를 띠고 일본에 향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이어 당시 노정과 자신의 나이를 대우하여 실제적인 일을 기술하고 있으며, 사직의 안녕과 나라에 이롭다면 죽는 것 또한 사양하지 않겠다는 의지 속에서 국가관을 표현하였다.
「서해문」은 황신의 문집인 『추포집』권2에 제문으로 분류되어 수록되었다. 또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고문서집성 9: 창원황씨편』에 수록되었다.
「서해문」은 급박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황신의 의지와 함께 국가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체상으로는 규칙을 준수하는 동시에 내용이 충실한 이상적인 변려문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