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금오시일기(築城金烏時日記)』는 1606년 당시 금오산성(金烏山城) 수성장이자 산성 수축 때 감동관(監董官)이었던 정방준이 축성을 주관하면서 기록한 일기로, 축성 과정을 일자별로 기록하였다. 이 일기는 17세기 초 축성 과정을 비롯해 축성역(築城役)의 동원 체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정방준(鄭邦俊)은 자가 군필(君弼), 호는 삼송(三松)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임진왜란 때 거창의 의병장에 차출된 바 있고,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의 수비에도 참여하였다. 『축성금오시일기』는 1책(41장)으로 된 필사본으로, 1606년(선조 39) 3월 22일부터 같은 해 10월 23일까지의 축성 기록이 중심이 된다.
축성 과정을 보면, 1606년 4월 1일 벌목을 시작으로 축성을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고, 4월 24일 제언(堤堰) 수축이 끝나고 관청 곳간 수축이 진행되었으며 5월 12일 우물 굴착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수축을 위한 경비 마련이 추진되어 흥해(興海)에서 미납된 소금을 받고, 개령현감 이근(李謹)이 군량을 봉납(捧納)하였으며 목재와 철 등이 속속 확보되었다.
7월 2일 성의 둘레 및 형지안(形止案)이 작성되었고, 7월 25일 이후 선산(善山)이나 지례(知禮), 성주(星州) 등지에서 군인들이 도착하였으며 8월 14일에 본격적인 축성이 시작되었다. 9월 14일 체성(體城) 수축이 완료된 뒤 옹성(甕城)과 외성(外城), 포혈(砲穴) 작업이 진행되어 9월 22일경 산성 수축이 일단락되었다.
당시 축성 과정에 동원된 역군(役軍)은 진관 체제(鎭管體制) 하의 속오군(束伍軍)들이었으며, 일부 목재를 운반하는 모군(募軍)에게만 급료를 지급하였다. 이어 1608년(선조 41) 1월에 제출한 상소초(上疏草), 같은 해 9월 일기를 마치면서 산성 내 일에 대한 소회를 소재로 5언 장편시를 수록하였다.
개인 일기이면서도 축성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업무일지적인 성격의 일기이다. 금오산성의 축조 과정에 대한 전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축성역의 동원 체계 등 당시 국가 운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