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崔瑆煥)은 1813년(순조 13)에 출생하였다. 자는 성옥(星玉)이고, 호는 어시재(於是齋)이며,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중인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최윤상(崔潤祥)이고, 아버지는 최광식(崔匡植)이다.
1838년(헌종 4) 무과에 급제한 뒤 1843년(헌종 9) 이후 수문장을 지냈고, 1844년(헌종 10)에는 훈련도감 초관(哨官)을 지냈으며, 1845년(헌종 11)에는 종4품의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무겸선전관과 훈련원주부를 지냈다. 1849년(철종 즉위) 훈련원 판관, 1851년(철종 2) 경복궁 위장(景福宮衛將)을 지냈고, 같은 해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1852년(철종 3)에는 중추부도사를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에는 대왕대비와 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설치한 가상존호도감(加上尊號都監)에 별간역(別看役)으로 참여하였다. 1874년(고종 11)에 다시 수문장에 제수되었다. 1891년(고종 28)에 사망하였다.
최성환은 중인인 율과(律科) 출신 장지완(張之琬), 역과(譯科) 출신 정수동(鄭壽銅) 등과 교류하는 한편, 판서를 역임한 남병철(南秉哲)의 후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1882년(고종 19)과 1885년(고종 22) 두 차례에 걸쳐 시무에 관한 상소를 올린 바 있는데, 특히 1882년에는 『효경대의(孝經大義)』와 『고감(古鑑)』두 책을 올리고 이를 중외에 널리 알려 교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효경대의』는 『효경』의 장구(章句)에 옛 사람들의 훌륭한 행실을 경서와 사서 등에서 발췌하여 첨부한 것이고, 『고감』은 이전 역사에서 군신(君臣)의 선악 중 경계할 내용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이 밖에도 최성환은 다수의 저술을 편찬하였는데, 『고문비략(顧問備略)』은 헌종 연간 국왕의 초치(招致)를 받은 뒤에 국왕을 만나 발언하기 위해 정치와 군사, 제도 및 관리의 인사나 인재 등용 등과 관련된 시무를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그러나 헌종의 승하로 국왕에게 올리지는 못했다.
또한 남병철이 발문을 쓴 『시민요결(視民要訣)』, 역대 중국의 시선집인 『성령집(性靈集)』과 한국의 역대 시를 모은 『동국아집(東國雅集)』, 교류했던 정수동의 시를 모아 간행한 『하원시초(夏園詩抄)』, 교화서인 『태상감응편도설(太上感應篇圖說)』, 지리서인 『여도비지(輿圖備志)』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