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고려 중엽 이규보가 지은 「가포육영(家圃六詠)」이라는 시에서 “무 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되네.”라 하여 처음 등장한다.
1450년(세종 32)경에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로 알려진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오이김치, 가지김치, 무김치, 동치미, 나박김치, 동아김치, 파김치 만드는 법과 여름에 담그는 김치, 급히 담그는 김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고추를 넣어 담그는 김치는 1766년(영조 42) 유중림(柳重臨)이 쓴 『증보산림경제』의 황과담저법(黃瓜淡菹法)에서 오이의 배를 갈라 고춧가루[蠻椒末]와 마늘편을 소로 넣는 김치가 처음 기록되어 있다.
1809년(순조 9) 빙허각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섞박지는 각종 젓갈류와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로 오늘날의 김치 담그는 법과 거의 같다.
특히 입동 무렵에 겨울부터 봄까지 먹기 위하여 한 번에 많은 김치를 담그는 김장 풍속은 우리 가정의 중요한 세시풍속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봄철의 장 담그기와 겨울철의 김장 담그기는 가정의 중요한 1년 계획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농가월령가』 「시월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10월의 절기와 무 · 배추 수확, 겨울 준비, 가내 화목, 한 동네의 화목 등을 권하고 있다.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마저 하세 /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 앞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 박이무우 알암말도 얼잖게 간수하소”
김장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담그는 풍속이 있었고, 김장을 하는 집에서는 배춧국에 돼지고기 수육, 배추의 노란 속잎과 양념을 준비하여 일하는 사람이 먹도록 하였다. 김장이 끝나면 절인 배춧속과 양념, 겉절이 등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속도 있었다.
이러한 김치 담그기는 협동과 나눔이라는 공동체 정신이 담겨진 문화로, 문중 · 친인척 · 마을 · 이웃과의 관계에서 결속을 갖게 되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문화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2017년 11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다만, 김치 담그기는 고도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전승되는 일반적인 생활 관습이고,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