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신문왕조(神文王條)에서 683년(신문왕 3) 왕이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할 때 납채(納采)로 장(醬)과 시(豉)를 보냈다는 기록이다.
『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에는 1018년(현종 9)에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백성에게 시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1450년(세종 32)경에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로 알려진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메주 만드는 법, 장 만드는 법, 장 맛 고치는 법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장의 종류도 간장, 난장, 청장, 청근장, 상실장, 천리장, 치장 등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장 담그는 일은 궁중이나 일반 가정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행사로 여겼다. 정유재란 때 선조는 영변(寧邊)으로 피난하기로 하고, 장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관리를 먼저 영변으로 파견하는 것을 논의하였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1월령에는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3월령에는 “인간의 요긴한 일 장 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라 하였다.
흉년이 들었을 때의 대처 방법을 기록한 『구황촬요(救荒撮要)』에도 콩을 구하기 어려울 때 콩깍지, 콩잎 등으로 장을 담그는 법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는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독특한 장 제조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메주를 띄우는 과정을 거친 후, 된장과 간장 두 가지의 장을 만든다는 점, 전년도에 쓰고 남은 씨간장을 이용해 수 년 동안 겹장의 형식을 거친다는 점 등은 한국의 장 담그기가 갖는 특징이자 독창적인 부분이다.
장은 음식 맛을 내는 기본으로 여겨서 맛있는 장을 만들기 위하여 길일을 택하여 장을 담그고, 나쁜 기운이 침범하여 장 맛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장에 숯이나 고추를 띄우고, 장독에도 금줄을 치거나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방지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 음식 조리법이나 식문화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 한국의 주거문화, 세시풍속, 기복신앙, 전통과학적 요소 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 세대 간 전승에 의해 모든 한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2018년 12월 27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다만, 장 담그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각 가정을 중심으로 현재도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