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문인 이장용(李藏用, 12011272)이 선종의 종파와 법맥을 정리한 책이다. 제목으로 볼 때 계보도의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생각되며,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1976년 이종익(李鍾益, 19121991)이 『대한불교조계종중흥론』을 찬술하면서 이장용의 『선가종파도』를 보았다고 하였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이장용은 경서와 사서를 널리 읽고, 국자감의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하는 등 유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음양(陰陽) · 의약(醫藥) · 율력(律曆) 등 다양한 사상에도 두루 해박하였다. 특히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불서를 읽고 공부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주요 승려들과도 깊이 있게 교류하였다. 젊은 시절에 수선결사 제2세인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문도(門徒)로 자처하였고, 이후에도 혜심의 제자인 탁연(卓然)을 비롯하여 백련결사 제4세 사주인 진정국사 천책(天頙),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一然, 12061289) 등과 교류하였다.
이장용은 『선가종파도』 외에도 의상이 제자인 진정(眞定)의 어머니의 사후 명복을 빌기 위해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행한 『화엄경』 강의를 기록한 『화엄추동기(華嚴錐洞記)』를 윤색(潤色)하였다고 하는데, 본래 구어체의 한국식 한문으로 기록된 『화엄추동기』를 문어체의 순수 한문의 형식으로 고쳐 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선가종파도(禪家宗派圖)』는 이름으로 볼 때 선종의 주요 종파의 법맥을 계보도의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선종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중국에서 선종의 계보에 대해 초조 보리달마에서 시작하여 제2조 혜가(慧可), 제3조 승찬(僧璨), 제4조 도신(道信), 제5조 홍인(弘忍)으로 이어지다가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혜능(慧能)의 남종선으로 나누어지고, 주류인 남종선 내부에서는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와 그 제자 앙산혜적(仰山慧寂, 814-890)의 가르침을 잇는 위앙종(僞仰宗),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사상을 계승하는 임제종(臨濟宗),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및 그 제자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에서 시작되는 조동종(曹洞宗), 운문문언(雲門文偃, ?-940)을 계승한 운문종(雲門宗),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을 계승한 법안종(法眼宗) 등이 출현하였으며, 송대에 임제종이 선종의 주류가 되면서 그 내부에 양기방회(楊岐方會, 992-1049)를 따르는 양기파와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을 따르는 황룡파가 발전하였다는 오가칠종(五家七宗)의 계보 인식이 확립되어 있던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선종사의 인식에 기초하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이장용이 활동하던 시기에 수선결사가 무인집정 최우(崔瑀, ?-1249)와 최항(崔沆, ?-1257) 등의 후원을 받아 고려 불교계를 주도하였고, 이장용 본인도 수선결사 제2세 사주 혜심 및 그 제자 탁연과 깊게 교류하였으므로, 수선결사의 관점도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후대의 선종 계보도가 중국의 선종만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선종의 계보까지 포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수선결사에서는 당시의 선종에 대해 기존의 선종 9산문이 지눌 이후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