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기안동유적(華城旗安洞遺蹟)은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된 송풍관이 출토되었는데, 낙랑 제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낙랑계 토기가 수습되어 낙랑 이주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탄요도 확인되어 철(철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의 수급 관계를 알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는 송풍관의 제작 방법이 이전 발굴 유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인 집단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성기안동유적은 화성을 정점으로 북서쪽에 형성된 가지 능선 중에 위치를 달리하여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경기역사문화유산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를 통하여 두 지점에서 철, 철기 생산 유적이 확인되었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에서 조사한 유적은 아파트 및 학교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시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유적은 한성기 백제 고고학 및 고대 생산유적 연구의 학술 자료를 수집하여 경기도 남부 지역 한성 백제 고고학 연구와 조사의 중장기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에서 조사한 유적은 구릉의 동 · 서 사면 하단부를 중심으로 진행한 결과 도랑 103기, 원형 도랑 12기, 구덩이 222기, 노적 10기, 구운흙 14기, 고상 가옥(高床家屋: 나무 위나 지면으로 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은 집) 22기, 공방지 5기, 숯가마 1기, 조선시대 집터 9기, 공방지 5기, 찬방지 3기, 분 4기 등 총 405기가 확인되었다.
제철 공정은 단련단야(鍛鍊鍛冶) 공정이 대부분이나 소량의 유출재와 정련재로 보이는 철재, 끝부분이 유리질화된 송풍관 조각 등으로 보아 제련 또는 정련단야(精練鍛冶) 공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야 공정 이외의 노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이 주로 낙랑계 토기가 확인되고, 경질민무늬토기류가 적고 한성기 백제 토기류가 보이지 않아 마한 단계의 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일부 토기는 한성기 백제 토기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한편 철(철기) 생산에서 중요한 연료인 숯가마가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유적은 노 1기, 폐기장 5기, 구덩이 1기, 물길 1기가 확인되었다. 1호 노는 제련로로 판단하고 있으나, 노의 크기로 볼 때 정련로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은 작은 면적이 조사되었기 때문에 향후 확대 발굴이 진행되면 철 생산 여부와 일관 공정의 양상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화성기안동유적의 고고지자기연대(Archaeomagnetic dating)는 경기역사문화유산원에서 조사한 유적의 숯가마가 210360년, 3호 노적은 17025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유적의 1호 노는 250360년, 4호 폐기장은 250350년, 5호 폐기장은 250~340년으로 측정되었다. 따라서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형성된 유적임에는 틀림없다.
철(철기) 생산은 다량의 원료 및 연료, 그리고 장인 집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같은 시스템이 유지, 운영되기 위한 고도의 정치체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화성기안동유적은 기안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의 성격 규명이 필요하다. 즉, 기안동 집단이 고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각 집단 간의 네트워크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