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여초리 섬마마을 남동편 능선에 위치한다. 주변 일대는 낮은 구릉과 구릉 사이의 충적지가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지표조사를 통해 여초리와 퇴천리 일대에서 다수의 토기 가마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초리 A·B·C지구와 퇴천리 토기 가마터로 명명하였다. 발굴조사는 1990년부터 1994년에 걸쳐 연차적으로 실시되었는데 모두 3기의 가마를 발굴하였다. 1990년 1차 조사에서는 15세기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를 조사하였고, 1991년에는 여초리 A지구에서 1기의 토기 가마를 조사하였다. 1993년 11월부터 1994년 1월에는 여초리 B지구에서 토기 가마 1기와 회구부를 조사하였다.
A지구 토기 가마는 아궁이와 연도는 이미 상당부분이 훼손된 상태였으며, 잔존 규모는 길이 1,300㎝, 너비 160㎝, 높이 120㎝이다. 가마는 능선의 경사면을 이용한 지하식 구조의 등요(登窯)로 밝혀졌다. 소성실은 무계단식 구조이나 연소실과의 경계 지점은 바닥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어 이채롭다. 소성실은 연도로 향할수록 급격히 높아지고 폭도 좁아지는데 상면 경사도는 18°내외이다. 소성실의 바닥과 측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소 3회 이상의 수리 흔적이 확인된다. 소성실 내부에는 약간의 토기편과 토기 받침대가 남아 있었다. 회구부는 아궁이로부터 약 5m 가량 떨어져 확인되며 목탄재, 소토, 토기편, 가마 벽체편 등이 다량 퇴적되어 있었다. 회구부의 전체 규모는 길이 25m, 너비 10m 정도이다. A지구 가마에서는 대호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단경호·노형기대·시루·고배·뚜껑 등 토기류와 토기 제작 도구인 내박자와 토기 받침대도 출토되었다.
B지구 토기 가마는 천정부가 대부분 붕괴되고 아궁이 부분이 유실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구릉사면을 굴착한 반지하식 구조의 등요로, 잔존 규모는 길이 1,220㎝, 너비 190㎝이다. 전체적으로 세장한 형태이다. 소성실은 무계단식 구조이며, 아궁이에서 소성실 전반부까지는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중반부부터 서서히 높아지는데 상면 경사도는 11°내외로 완만한 편이다. 연소실과 소성실 벽체는 적어도 2~3회에 걸쳐 보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회구부는 가마의 전방과 좌우측에서 확인되었는데, 회구부가 좌우측에 존재하는 것이 특이하다. 가마 상면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호가 가장 많고, 단경호·개·기대·파수부배·시루·토기 받침대 등이다. 대부분 도질제이나 대호·옹·시루·타날문 단경호 등 일부는 연질로 소성되었다.
종합하면, 여초리 유적에서는 A, B, C 3개 지구에서 4기의 토기 가마가 확인되었다. A지구 가마는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지하식 등요로 대호와 대옹을 중심으로 중대형 토기를 제작한 가마이며, B지구의 가마는 반지하식 등요로 대호 외에 소형 도질토기와 더불어 적갈색 연질토기를 소성하였다. B지구 가마 역시 출토품으로 보아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C지구는 채집유물로 보아 6세기대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