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묘사2길 370-6 일대에 위치하며, 윗장명 마을의 북쪽에 길게 뻗은 능선의 남쪽 사면에 토기 가마가 축조되어 있다. 아라가야의 중심고분군인 말이산고분군에서 4.5㎞ 떨어진 거리에 있다. 유적의 앞쪽으로 소선상지가 발달해 있고, 아래쪽에는 충적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 토기 가마가 조업할 당시에는 물길을 통해 낙동강과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99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자기탐사와 지중 레이다탐사를 실시한 결과 5기 이상의 가마가 확인되었으며, 이 중 2기의 가마와 1기의 회구(灰丘)부에 대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 가마는 능선의 경사면을 이용한 반지하식 등요(登窯)로 밝혀졌다. 가마는 가옥과 밭 경작 등으로 상당히 파괴된 상태였으며, 1호 가마의 경우 소성실이 지표상의 단애면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1호 가마의 잔존 규모는 길이 500㎝, 너비 230㎝, 높이 90㎝이며, 풍화혈암층을 굴착하여 축조한 반지하식, 무계단식 구조의 등요였다. 천정부는 함몰된 상태였고 소성실 내부에는 벽체와 토기편이 다량 퇴적되어 있었다. 소성실은 긴 타원형 형태이고 연도부는 삭평된 상태였다. 소성실 바닥을 조사한 결과 2개의 층이 확인되므로 최소한 1회 이상의 수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마의 상면 경사도는 19° 내외이다. 소성실 내부에서 가마가 폐기될 당시에 남겨진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는데 고배와 단경호, 노형기대가 대다수이다. 단단하게 구워진 경질토기가 대다수이나 연질 소성의 단경호도 공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2호 가마는 1호 가마의 동쪽에 연접해 있으며, 1호 가마와 같은 반지하식의 무계단식 등요이다. 잔존 규모는 회구부를 포함하여 약 16m이고, 소성실의 길이는 650㎝, 너비는 155㎝이다. 소성실의 아궁이와 연도를 잇는 가마의 주축 방향은 N73°W이며, 소성실 상면의 경사도는 15° 정도이다. 소성실은 풍화혈암층을 파내 구축하였으며 측벽과 상면은 별다른 보수없이 기반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가마의 개보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소성실의 상면과 회구부 등에서 단경호편과 고배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회구부는 2호 가마에서 약 5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2호 가마와는 다른 가마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범위는 10m 정도이고 목탄과 소토, 토기편, 가마벽체 등이 다량 퇴적되어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단경호와 고배, 그리고 노형기대이다. 단단하게 구워진 경질토기와 약하게 소성된 연질토기가 혼재하며. 토기 제작에 사용된 내박자도 2점 출토되었다.
가마와 회구부에서 출토된 토기는 4세기 후반으로 편년된다. 조사결과 묘사리 윗장명 일대는 대규모의 전문화된 토기 생산 시설이 밀집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