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대동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원형수혈유구 1기, 원삼국시대의 주구묘 9기,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1기 등이 확인되었다.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사면과 북사면에 유구가 위치하는데, 그 중 주구묘 9기의 배치 상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릉 정상부에 대형 주구묘인 1호 ·8호가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8호 남쪽에 인접하여 또 하나의 대형 주구묘인 7호가 자리한다. 1호 주구묘 남서쪽 아래에 2호 ·3호 ·4호와 5호 ·6호가 각각 군집된 양상을 보이며 조성되어 있다. 북사면에서는 9호 주구묘 1기만이 확인되었다. 대동리 유적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구묘들은 비슷한 규모 2~3기가 서로간의 중복 없이 독립된 묘역을 가지고 인접한 상태로 작은 군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 상태로 볼때, 대동리유적 주구묘는 가족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구묘 가운데 8기는 남서쪽 변이 개방되어 있으며 6호는 남쪽 변이 개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주구묘의 개방 변이 구릉의 사면에 관계없이 같은 방향이라는 점이 주목되며, 이는 방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남서쪽에는 서해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8기의 주구묘 가운데 대상부에서 매장주체부가 확인된 경우는 없다. 이는 경작과 삭평 등에 의해 유실되거나 파괴되었기 때문이며, 다만 주구내에서 옹관묘로 추정되는 대형 옹관들이 발견되고 있다. 옹관들은 형태가 고창 송룡리, 함평 월야 순촌유적 등에서 출토된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대동리유적 출토 옹관은 기원후 3세기 전반~3세기 중반 경의 옹관으로 볼 수 있다.
부안하립석리유적에서 확인된 유구는 대부분 해발 28m 내외의 낮은 구릉상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조사된 유구는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주거지 2기와 6호 주구묘 내에서 확인된 장방형수혈유구 1기이다. 원삼국시대 이후 유구로는 대부분 주구묘와 토광묘, 옹관묘 등 원삼국(마한)시대 분묘들과 고려시대 주거지 1기, 성격을 알 수 없는 구상유구와 원형의 수혈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우선 남사면의 상단부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유구 2기는 평면형태가 원형으로 추정되며, 1호와 2호의 경우 원형의 주거지 내부에 타원형구덩이가 확인된 송국리형 주거지이다. 3호는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주거지로 추정된다. 하지만 성격미상의 구상유구 등과 중복되었고 후대의 경작 등으로 훼손되어 축조 당시의 규모나 주거지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렵다.
주구묘는 모두 14기가 조사되었는데, 기본적으로 남동쪽 변이 열린 'ㄷ'자형이고, 각 변의 모서리 부분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으며 모두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주구묘들은 서로 중복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토광묘는 구릉의 사면에 조성된 것으로 모두 5기가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등으로 볼 때 원삼국시대의 것이다. 또한 옹관묘는 주구묘에 부수되어 나타나는 매장묘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기원 후 3세기 전반 이전으로 편년된다. 따라서 하립석리유적은 주구묘의 평면형태와 매장주체부의 변화양상, 그리고 출토된 옹관 등으로 볼 때 3세기 전반을 중심연대로 하여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