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여미리유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산 447-1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1998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현, 충청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하였으며 4세기 말부터 백제말까지의 백제 분묘 유구 등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여미리유적은 서해안 고속도로건설 예정부지내에서 한국도로공사에 의해 시행된 지표조사를 통하여 처음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은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I지역), 여미리(Ⅱ지역)으로 구분하여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한 결과 Ⅰ지구에서 백제 널무덤 8기 · 수혈식 돌덧널무덤 1기 · 횡혈식 석실분 2기 · 횡구식 석곽분 17기 · 독무덤 4기 · 와관묘 5기 · 매납 유구 9기 · 구상 유구 9기 · 건물 터 2동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는 시대 미상의 수혈 유구, 적석 유구, 미상 유구가, Ⅱ지구에서는 조선 시대 건물 터 1동, 수혈 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중 Ⅰ지구에서 발견된 백제 분묘 중 토광묘의 경우는 총 8묘로, 구조적으로 일반적 토광묘와 별다른 차이가 확인되지 않는다. 부장유물 또한 6호와 8호 토광묘에서만 석실분에 부장되는 고배 등이 출토되어 특징을 보이고 있다. 횡혈식 석실분의 경우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을 하고있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며 묘실의 위치가 지상에 가깝고 관정이 출토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수혈식 석곽분과 마찬가지로 할석을 이용하여 벽면을 축조하였다. 횡구식 석곽분은 장축방향에 따라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장축 방향이 등고선 방향에 평행하는가 직교하는가에 따라 구분되었다. 이들 분묘들은 대부분 할석과 판석 등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서산여미리유적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와관묘(瓦棺墓)의 발견으로, 와관묘는 북한 지역을 제외하면 한반도 내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분묘 형식이다. 암키와를 사용하여 조성된 이 묘는 백제의 묘제연구에 새로운 자료로 추가되었다. 조선시대 건물 터는 사면에 조성되어 대부분 훼손되어 일부 담장열과 적심석만이 확인되었다.
Ⅱ지구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조선시대의 건물터로, 기와와 자기류가 출토되었으며 기와의 배면에 새겨진 "안국사"라는 사명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하여 해당 건물지가 폐기된 기와를 사용해 축조한 사찰지 등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