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조선 전기에 왕실에서 간행한 목판본 불서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석종사 도서인 이 불서는 조선 태종 대에 왕실에서 삽화를 추가하여 간행한 목판본 서적이다.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기에 유교적 가치가 중시된 조선시대에도 널리 간행되었다. 이 목판본은 조선 초기에 간행되어 보존 상태가 우수하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권85에 수록된 ‘불설부모은중경’이라는 제목의 돈황(敦煌) 출토 단권 경전(no. 2887)에는 번역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대주간정중경목록(大周刊定衆經目錄)』 권15나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권18 등에서는 “고래로 전하지만, 모두 가짜라고 한다〔古來相傳皆云偽謬〕”거나 '위망난진록(僞妄亂眞錄)'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유통된 판본에는 대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고, 번역자를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4)으로 적시하고 있다.
석종사 도서의 크기는 세로 27.0㎝, 가로 14.0㎝이며, 장정 형태는 선풍장(旋風裝)이다. 본문은 28행 15자로 되어 있고 자경(字徑)은 1.5~2.0㎝이다. 세로 21㎝, 가로 50㎝ 크기의 목판에 1407년(태종 7)에서 1454년(단종 2) 사이에 인쇄하였다. 표지가 없고 안쪽에 얼룩이 묻어 있어서 복장물(服臟物)로 보이며, 비교적 보존 상태와 종이의 질이 우수한 편이다.
이 경전을 최초로 언급한 『대주간정중경목록』(595년)이나 『개원석교록』(730년)의 간행 연대를 감안하면 그 출현 시기는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석종사 도서의 경우 간기(刊記)가 없어서 편찬 경위와 간행 계기는 파악할 수 없으나, 조선 초기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하면서 불경 중 특이하게도 효를 강조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에도 적합하다고 보아 왕실에서 적극 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후기에도 이 경전이 왕실에서 중시되었음은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教通史)』에 실린, “정조 14년(1790)에 3본을 판각하여 수원 용주사에 보관하였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의 앞부분에서는 ‘가슴에 품어 주고 지켜 줌, 해산의 고통을 참음,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음,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먹여 줌, 젖은 자리에 눕고 마른자리에 뉘어 줌, 젖을 먹여 키워 줌, 더러운 것을 씻어 줌, 멀리 떠남을 걱정해 줌,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기꺼이 함, 끝까지 염려해 줌’ 등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열 가지 은(恩)에 대하여 게송(偈頌)과 삽화를 통해 이해를 돕고 있으며, 뒷부분에는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때 받게 될 지옥의 고통,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해야 할 행동 등이 기술되어 있다.
고려 말부터 국내에 유통된 판본은 돈황본과 비교할 때 지옥에 대한 언급이 있고 불효하는 자식에 대한 원망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효를 강조하여 유교적 가치에 부합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중국에서는 위경(僞經)으로 분류되어 돈황과 같이 외곽 지역에서만 일부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 왕실에서 이 경전을 적극적으로 간행, 유통한 것은 당시 중시한 유교적 가치 체계에 이 경전이 부합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석종사 도서는 보존 상태가 우수하며 국가유산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2003년 5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