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음첨기법은 향찰·구결·이두에서 우리말 단어의 끝 음절이나 끝 자음을 덧붙이는 차자표기법이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사용하였고, 김완진과 남풍현 등이 수용하였다. 남풍현은 석독구결을 다루면서 말음 첨기가 훈독 구성소에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 말음첨기는 수의적으로 나타나며 첨기된 대상에 따라 ‘음절말 자음 첨기’와 ‘어말 음절 첨기’로 구별된다. 말음첨기는 향찰에서부터 생성되었고 이후의 차자표기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석독구결에서는 말음첨기의 쓰임이 풍부해졌다. 말음첨기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초·중·종성의 삼분체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사용하였고, 김완진, 남풍현 등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남풍현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석독구결을 다루면서 말음첨기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즉 말음첨기는 원칙적으로 훈독되는 구성소에 나타난다. 음독되는 구성소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또 말음은 수의적으로 첨기되는 것이어서 같은 한자라도 첨기되기도 하고 않기도 한다. ‘當’의 ‘’는 ‘기’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當의 훈 ‘반ᄃᆞ기’의 말음을 첨기한 것이다. ‘及’은 15세기의 접속부사 ‘밋’에 대응하는 것으로 ‘/ㅅ’은 그 말음을 첨기한 것이다.
말음첨기는 첨기된 대상에 따라 ‘음절말 자음 첨기’와 ‘어말 음절 첨기’로 구별된다. 즉, ‘夜音, 雲音, 唯, 入, 只火乙’에 나타난 첨기자는 음절말 자음 첨기가 반영된 것이고, ‘川理, 岩乎, 佛體, 秋察, 佛’에 보이는 첨기자는 어말 음절 첨기가 반영된 것이다.
말음첨기는 향찰에서부터 생성되었으며, 향찰에 나타난 음절말 자음 첨기자는 ‘音(ㅁ), 尸(ㄹ), 叱(ㅅ), 隱(ㄴ), 只(ㄱ)’이다. 이것은 이후의 차자표기법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주목할 점은 자음체계상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ㄷ, ㅂ, ㅇ’ 등에 대한 첨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헌자료의 절대적 부족 탓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석독구결에서는 말음첨기의 쓰임이 상당히 풍부해졌다. ‘(ㅁ), /(ㄹ), (ㅅ), (ㄴ), (ㄱ)’이 음절말 자음 첨기자로 나타나는데 그중 ‘’은 원래 대격조사나 관형사형 어미로 쓰이던 것이었으나 ‘入’에서 유일하게 음절말 자음 첨기자로 쓰였다. 또한 ‘初’는 ‘*첫엄’으로 해독될 수 있는데, 어말의 음절말 자음만 첨기한 것이 아니라, 첫음절의 말자음까지 첨기하고 있다. 『혜성가』에 보이는 ‘彗叱只’는 ‘*뷧ᄌᆞᄅᆞᆨ’으로 재구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 역시 어말의 음절말 자음 첨기자와 첫음절의 음절말 자음 첨기자가 동시에 첨기된 예가 될 수 있다.
음절말 자음 첨기는 기능 면에서 음절말 자음 표기와 구별되며, 첨기된 한자구성소가 훈으로 읽혀야 한다는 정보를 준다. 그리고 어휘적, 문법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잉여적인 표기이며 따라서 수의성을 특징으로 한다. 나아가서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음절말 자음 첨기는 한문을 국어 어순으로 하여 음독하고 거기에 토를 다는 표기방식인 이두에는 잘 반영되지 않았다. 물론 이두에도 ‘音(ㅁ), 叱(ㅅ), 只(ㄱ)’이 음절말 자음 첨기자로 나타난다.
한편 『향약구급방』에는 ‘次’가 말음 첨기자로 나타난다. ‘次’는 향찰, 석독구결, 이두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새로운 첨기자이다. 이러한 말음첨기법 전통은 근대국어시기 한글문헌뿐 아니라 국자(國字, 乭 · 哛 등)에까지 이어졌다.
차자표기에 보이는 음절말 자음 첨기는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 중국의 성운학적 체계인 이분체계를 극복하고 초 · 중 · 종성의 삼분체계를 형성하는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말음첨기법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근대국어 시기까지 꾸준히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