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우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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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문헌
조선 초기에 간행된 김수온의 금속활자본 문집.
문헌/고서
간행 시기
조선 초기
저자
김수온
판본
금속활자본(갑진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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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식우집』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김수온의 금속활자본 문집이다. 초기 원집의 분량에 대해서는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2질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5권으로 문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서 ‘제후(題後)’에 언급된 24권이라는 기록은 불확실하다. 이뿐만 아니라 낙질본에도 누락이 많아 시 몇 수가 추가되어 있고 ‘동인시화서(東人詩話序)’도 권2의 뒤에 추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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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에 간행된 김수온의 금속활자본 문집.
내용

저자인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은 본관이 영동(永同),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와 식우(拭疣)이며 시호는 문평(文平)이었고 부친은 김훈(金訓)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자(正字)를 거쳐 세종의 명으로 집현전 학사가 되었다. 1446년 부사직(副司直)부터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병조정랑이 되었다.

문종 때부터 1451년에 전농시소윤(典農司少尹), 지영천군사(知榮川郡事) 등을 거쳐 세조대인 1458년(세조 4)에는 동지중추부사,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9년에 한성부윤, 이듬해 상주목사, 1464년에 지중추부사 · 공조판서, 판중추부사, 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성종대에는 1469년(즉위년)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을 거쳐 1474년에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그는 세종 때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존경하던 승려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불경에 통달하고 유거 경전에도 해박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나라까지 알려졌고 당대의 석학들인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이석형(李石亨) 등들과 교유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식우집(拭疣集)』이 있다. 이 명칭은 김수온의 목에 혹이 있어서 글을 쓸 때마다 손으로 ‘혹[疣]’을 ‘쓰다듬으며[拭]’ 썼다 하여 ‘식우집’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처음 이 문집은 성종의 명으로 교서관에서 금속활자인 갑진자(甲辰字)로 초간본을 24권으로 찍어내었지만 화재로 전질이 거의 없어지고, 권2, 권4만의 낙질본만 전하고 있다.

이 낙질본은 후손인 김우준(金禹濬)이 1673년에 이르러 『속동문선(續東文選)』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가장(家狀) 등에서 10여편의 저자의 시문을 모으고 필사하여 낙질본과 함께 1책을 편찬한 것이라 한다. 이 때의 김우준이 쓴 『경제식우집후(敬題拭疣集後)』에 의하면, 성종의 명으로 교서관에서 저자의 문집 24권과 공신록 1권을 인출하여 여러 신하와 및 후손들에게 반사하였으나 종손 김득하(金得河)에 이르러 소장하던 문집이 화재로 불타버렸다고 한다.

초기 원집의 분량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기록이 달라서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2질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5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제후(題後)’에 언급된 24권이라는 기록은 불확실하다. 이뿐만 아니라 낙질본에도 누락이 많아서 시 몇 수가 추가되어 있고 ‘동인시화서(東人詩話序)’도 권2의 뒤에 추보되어 있다.

전체적인 수록 내용은 저자가 세조대의 고승인 혜각존자 신미(信眉)의 동생인 관계로 회암사, 상원사, 정인사의 중창기 등 사찰과 관련된 기록이 많다. 수록된 내용 중 권2는 기(記) 35편과 추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序) 1편으로 이 가운데 기는 대부분 사원과 누각에 관한 것이고 그 일부는 『동문선(東文選)』 등에서 확인된다. 특히 사찰 누각의 건축과정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기록이 많아 당시의 불교계와 주변 배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권4는 부(賦)와 시이며 보유편은 필사본으로 시(詩), 서(書), 전(箋), 찬(撰), 행장(行狀), 신도비명(神道碑銘), 제문(祭文) 등이다.

그는 『치평요람(治平要覽)』,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석가보(釋迦譜)』를 증수하고 『명황계감(明皇誡鑑)』과 『금강경(金剛經)』 등을 번역하는 데 참여하였다. 뛰어난 문재로 「원각사비명(圓覺寺碑銘)」을 펴내고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을 정하는 데도 참여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15-16세기 불경들의 발문과 지문(識文)에는 김수온이 참여하거나 펴낸 내용이 많다.

참고문헌

논문

김윤섭, 「金守溫의 佛敎的 精神世界에 관한 一考」(『한국학연구』 43,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2)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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