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합당 ()

정치
사건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된 사건.
이칭
이칭
삼당통합(三黨統合)
사건/사건·사고
발생 시기
1990년 1월 22일
종결 시기
1990년 2월 9일
발생 원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삼김의 대권 경쟁
발생 장소
서울
관련 국가
대한민국
관련 단체
통일민주당,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관련 인물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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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3당합당은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된 사건이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과거 5·16세력이었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신군부세력이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을 만들게 된 사건을 말한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내에서 민주계의 김영삼이 대권을 잡아 문민정부가 탄생하게 되고, 이후 ‘하나회 척결’을 통해 정치군인들을 제거함으로써, 김영삼 정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의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연합하여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된 사건.
발단

1987년 제6공화국헌법으로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가 채택되면서, 김영삼통일민주당, 김대중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이른바 ‘삼김시대’의 새로운 역학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1987년 제6공화국 이후에는 그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삼김경쟁구도’가 제6공화국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1987년 12월의 제6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며, 이후 정치적 경쟁의 관계는 최고조로 치닫게 된다. 두 사람의 단일화 실패는 민주화세력 및 다수 유권자들의 표가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분열되며, 제5공화국(1981~1987) 신군부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어부지리 당선을 가져왔다. 3당합당의 근본적 원인을 보자면, 결국 이러한 야당 분열 및 야당 내에서의 주도권 경쟁일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와 해당 분열의 성격은 김영삼을 지지하는 영남 세력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호남 세력의 지역균열 구도였다. 1987년의 대선에서 득표율에선 김영삼이 김대중을 앞섰다. 하지만, 1988년 총선에서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하에서 영남의 표는 분열되고(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호남은 결집되며(평화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을 의석수에서 앞섰다. 일단 다음번 대선 때까지는 여당 민주정의당에 대해서 ‘제1야당’의 위치에서 여당을 상대하는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

경과 및 결과

3당합당선언으로 1990년 2월 9일에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이 창당되었다. 많은 국민들은 3당합당이 공포되자 정치인 김영삼의 실험정신을 넘어서는 무모함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에서 군사정권과 맞서 ‘민주화투쟁’, ‘선명야당’의 기치로 일관하던 정치인 김영삼이 5·16세력 및 신군부세력과 합당을 한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최고의 정치실험 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의의 및 평가

해당 정당통합은 대선에서의 ‘선거승리연합’의 성격이 있으며, 이념적으로 근접한 정당들 간의 연합으로 ‘연결연합’(두 정당을 결합시키는 데 중간 매개자의 역할이 중대한 연합: 여기서는 김종필이 연합을 성사시키는 매개자의 역할을 함)의 성격이 있었다. 선거승리세력 형성을 위한 3당합당의 결과물의 핵심 행위자는 김영삼일 수밖에 없으며, 김영삼의 3당합당의 선언은 정치인 개인으로서의 권력차원과 한국정치사에서의 정치구도라는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정치인 김영삼은 경쟁자인 김대중과의 대통령후보에 대한 양보가 없는 한 민주세력의 표가 양분됨으로써 신군부세력이 지속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았으며,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신군부세력과의 타협을 통해서 ‘문민정부’를 탄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정치인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라고 심경을 표현하였다. 3당합당 이후 야당에 김대중의 평화민주당과 경쟁하는 양당체계의 형식이 도래하였는데 이는 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주의 구도를 더욱 뚜렷하게 한 효과와 더불어 21세기 이후 ‘보수’와 ‘진보’의 진영 간 정치적 대척점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임혁백, 『1987년 이후의 한국민주주의 3김정치시대와 그 이후』(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진영재, 『한국정치: 통치구조·정당·선거』(법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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