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896년(고종 33) 1월부터 태양력(太陽曆)을 사용하였다. 이 해는 역명(曆名)을 『시헌서(時憲書)』에서 다시 『시헌력(時憲曆)』으로 바꾼 때로, 처음으로 건양(建陽)이라는 독자 연호도 함께 사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1897년(광무 1) 8월에 연호를 다시 광무(光武)로 바꾸고 역서(曆書)의 이름도 『시헌력』에서 『명시력(明時曆)』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시헌력』과 다를 바 없는 역서지만, 역명을 고친 이유는 독립 국가로서 민심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 보고 있다. 『명시력』 시대는 태양력 보급에 박차를 가한 때로서 한반도 정세의 변화가 심한 때였다. 이 때 『시헌서』와 같은 체재의 역서가 학부관상소(學部觀象所)에서 『명시력』이라는 이름으로 1908년(융희 2)까지 출간되었다. 『명시력』이 이전의 역서와 다른 점은 역서 하단에 각 음력(陰曆) 일(日)에 해당하는 양력(陽曆) 일과 요일(曜日)을 함께 표시한 것이다. 이러한 표기는 1896년 1월부터 태양력이 공식적으로 채택되면서 태양력에 의한 역서는 음력 일과, 같이 사용하던 『시헌력』에 의한 역서는 양력 일과 비교하였다. 즉, 태양력이 공식적으로 채택되기는 하였으나 오랫동안 사용하던 태음 주1의 관습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여 1896년 이후의 역서는 태양력과 『시헌력』에 의한 2가지 종류가 간행되었다. 당시에 간행된 태양력 역서는 이 전의 역서와 달리 12달의 주2을 양력 일을 기준으로 하여 나타냈으며, 각 양력 일에 해당하는 요일과 음력 일 및 음력 일의 간지(干支)를 역서의 중단에 표시하였다. 그리고 주3, 현(弦), 주4일의 시각을 해당 양력 일 밑에 나타냈으며 24 절기의 입기(入氣) 시각과 일출입 및 주야각의 시간을 해당 양력 일 사이에 표시하였다. 그리고 태양력이 채택된 1896년 이후의 『시헌력서』는 이전의 역서와 달리 역서 하단에 음력 일에 해당하는 양력 일과 요일을 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태양력을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음력 일을 기준으로 제작된 『시헌력서』에 태양력 일과의 비교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명시력』은 1909년(융희 3)에는 ‘대한 융희 3년력(大韓隆熙三年曆)’, 1910년에는 ‘대한 융희 4년력(大韓隆熙四年曆)’으로 바뀌어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