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내공업은 일제강점기에 가족 노동력을 활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던 공업 형태이다. 가내공업은 가족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내에서 소규모 설비를 갖추고 필요한 생산물을 제작하거나 판매를 위한 약간의 잉여 생산물을 제작하던 방식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자신들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반도에 공장을 설립하여 공장제 생산 체제가 유입되었지만, 일본의 투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조선에서 가내공업은 전근대적 생산 방식을 유지하며 방직(紡織), 요업(窯業), 화학, 목제품 제작과 같은 분야에서 생산의 일부를 책임지며 존속하였다.
전근대(前近代) 시기, 산업화(産業化)의 영향을 받아 기계식 생산이 확산되기 이전에 가내에서 소규모로 생산하는 방식을 가내공업이라고 한다. 산업 혁명(産業革命) 이후 공장제 대량 생산 체제(大量生産體制)가 자리하면서 가내공업은 공산품(工産品)의 등장으로 가격 경쟁력(價格競爭力)에서 밀리며 공장제 생산 방식으로 대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산품으로 대표적인 품목이 면직물(綿織物)로, 가내공업으로 생산한 면직물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어 생산량의 한계가 공산품에 비교할 때, 분명하게 나타났다.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빠르게 직조한 면직물 때문에 가내공업으로 생산한 면직물은 가격 경쟁력과 품질에서 떨어지며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례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공장제 공업 체제가 확산되면서 가내공업이 사라지는 것이 산업 발달 구조상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가내공업은 일본의 수요에 따라 공장식 기계 생산 체제가 급격하게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문은 생산의 일부를 담당하며 존속한 것이 일제의 조사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식산국에서 1935년과 1937년에 시행한 가내공업의 부문별 조사를 통해 당시 조선에서 가내공업의 변동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로 볼 때,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가내공업으로 방직, 금속, 기계 기구, 요업, 화학, 목제품, 식료품 등의 생산물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부문에서는 공장제공업으로 대체되며 생산의 하향 곡선이 확인되지만, 아직 조선 내에 필요한 일부 생산 품목을 가내공업이 책임지는 산업 구조가 존속하였다. 이는 일본이 조선에 일정량 이상의 공장 시설을 제한적으로 투자하면서 여전히 가내공업이 조선 내 수요를 충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시설 투자가 일본의 수요에 따랐기 때문에 조선에 고르게 투자되지 않았고, 투자에도 지역별 차이가 있어 투자 결고가 온전한 산업 구조의 발달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조선에서의 가내공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된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