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환(王環)
그 뒤 생사를 알지 못하다가 일본에 표류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부인 신씨(辛氏)가 도당(都堂)에 요청하여 가노(家奴)를 일본에 보내 찾도록 하였다. 1389년(창왕 1) 가노가 영흥군 왕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왔지만, 그 모습이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조(父祖)의 이름이나 자기가 살던 고장조차 알지 못하였으므로 의심을 받았다. 이 때 부인 신씨의 종제(從弟)인 전 판사(前判事) 신극공(辛克恭), 전 판개성부사(前判開城府事) 박천상(朴天祥), 전 밀직부사(前密直副使) 박가흥(朴可興),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숭인, 하륜(河崙) 등 그의 인친(姻親)들은 영흥군 왕환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부인 신씨는 자기 남편이 틀림없다고 하여 결국 헌부(憲府)에 송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흥군 왕환의 두 아들과 여러 종실들이 그가 영흥군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