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朴榮喆)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4월 30일자에 “성산(成算) 없는 독립운동은 생명과 재산의 손실만 초래하고 설사 일본이 독립을 승인할지라도 조선인에게는 나라를 지탱할 능력이 없다”는 글을 실어 독립운동 방해에 협력하였다. 이 해 12월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1년 전라북도 참여관, 1925년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었다. 1926년 함경북도지사가 되었고, 같은 해 6월에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7년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 삼남은행 두취(頭取, 은행장), 동민회(同民會) 부회장, 산림수탈정책 협력단체인 조선산림회 이사, 경성상공회의소 특별위원을 맡았다. 1928년 조선상업은행 부두취(副頭取, 부은행장)가 되었고, ‘조선인의 교화 선도’를 내세운 조선불교단 이사, 경성협찬회를 발의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