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
1918년청룡사로 돌아와 다시 주지에 취임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한용운(韓龍雲)·백용성(白龍城)·백초월(白初月)·이종욱(李鍾郁)·상완(尙玩) 등의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일생 동안 근검 절약하여 모은 논 323석 분과 밭 10석 분이 넘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여, 금강산 마하연사(摩訶衍寺), 장안사, 표훈사(表訓寺), 신계사(神溪寺), 수원 용주사(龍珠寺), 예산 정혜사(定慧寺), 개운사, 청룡사, 오대산월정사(月精寺) 등 9개의 전국 유수 사찰에 고루 나누어 주었다. 개운사에는 이를 기리는 공덕비가 남아 있다. 1951년 5월 21일 나이 80세, 법랍 68세로 열반하였다. 문하에는 윤호·대용(大用)·보현(普賢)·보성(寶成)·보완(寶玩)·만성(滿性)·윤여(輪如)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