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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청룡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3·1운동 당시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한 승려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인월당(印月堂)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72년(고종 9)
사망 연도
1951년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때, 청룡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3·1운동 당시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한 승려 · 독립운동가.
내용

서울 출신. 비구니 스님. 당호는 인월당(印月堂). 아버지는 홍영일(洪永日)이고 어머니는 충주 김씨이다. 10세에 어머니가 서울 숭인동청룡사(靑龍寺)에 출가하여 법명을 창수(昌守)라고 했는데, 그 해 여름 언니인 금전(錦典)이 창수를 은사로 삼아 출가하였고, 2년 뒤인 1883년에 그녀도 창수를 은사로 삼아 청룡사에서 출가했다.

1886년(고종 23) 서울 개운사(開運寺)극락암(極樂庵)의 초암(草庵)에게 사미니계를 받았다. 1909년 3월청룡사 주지로 취임하였지만, 1911년 맏상좌 윤호(輪浩) 등을 데리고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관음암(觀音庵)에 들어가 8년 동안 정진했다.

1913년에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영봉(靈峰)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이듬해 2월 유점사에서 중덕법계를 품수(稟受)하고, 금강산보은암(報恩庵)의 석두보택(石頭 寶澤, 1882∼1954)에게서 ‘인월당’이란 당호를 받았다. 1918년청룡사로 돌아와 다시 주지에 취임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한용운(韓龍雲)·백용성(白龍城)·백초월(白初月)·이종욱(李鍾郁)·상완(尙玩) 등의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일생 동안 근검 절약하여 모은 논 323석 분과 밭 10석 분이 넘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여, 금강산 마하연사(摩訶衍寺), 장안사, 표훈사(表訓寺), 신계사(神溪寺), 수원 용주사(龍珠寺), 예산 정혜사(定慧寺), 개운사, 청룡사, 오대산월정사(月精寺) 등 9개의 전국 유수 사찰에 고루 나누어 주었다.

개운사에는 이를 기리는 공덕비가 남아 있다. 1951년 5월 21일 나이 80세, 법랍 68세로 열반하였다. 문하에는 윤호·대용(大用)·보현(普賢)·보성(寶成)·보완(寶玩)·만성(滿性)·윤여(輪如)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교인명사전』
『법보신문』
집필자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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