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죽정리 국장승 (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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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죽정리 국장승 정면
영암 죽정리 국장승 정면
민간신앙
유적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사각석비형 입석 장승. 석장생. 시도민속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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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사각석비형 입석 장승. 석장생. 시도민속문화재.
내용

1기(基). 1986년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군서면 동구림리 죽정마을에서 도갑사 쪽으로 굽은 길 북쪽 숲속에 있다. 과거에는 이 길이 도갑사의 옛길이었다고 전한다.

이 국장생은 가까운 소전머리 황장생(皇長生)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재를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사각석비형(四角石碑形)의 입석 장생으로 도갑사 입구에 있는 인면형 장승과는 전혀 형태가 다르다. 이곳 국장생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의 국장생과 비교되는 유물로서, 조성연대도 통도사 국장생의 고려 선종 2년(1085)과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다.

크기는 높이 120cm, 너비 70cm이다. 장생의 전면 상부에 확인되지 않은 문양이 있고 두 줄의 선을 사각 테두리로 하고 그 안에 해서체로 ‘國長生(국장생)’이라 종서(縱書)하였다. 그리고 우측에는 ‘□□六年(□□6년)’이, 하부 매몰부위에는 ‘石標四坐(석표사좌)’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중앙에 음각된 ‘國長生(국장생)’ 글씨는 자경(子徑)이 가로 26cm, 세로 27cm이며 좌우측 및 하단부의 글씨자경은 가로 5cm, 세로 8cm이다. 풍화가 심하여 글자의 판독이 매우 힘들다. 한편, ≪동국여지승람≫ 권35 영암군편 불우조(佛宇條)에 처음 보이는 국장생 관련 기록내용을 살펴보면 “도갑사는 도선이 일찍이 머물렀던 곳이다. 비가 있으나 글자가 결락(缺落 : 이지러져 떨어짐)되어 해독이 어렵다.

사하동(寺下洞) 입구에 두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에는 國長生(국장생) 3자를 새겼고, 하나에는 皇長生(황장생) 3자를 새겼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을 토대로 하단 부 ‘석표사좌’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죽정리국장생과 인근의 소전머리황장생이 2좌가 됨은 분명하고, 나머지 2좌 가운데 1좌는 군서면 서구림리 메밀방죽 옆에 있는 ‘□장생’일 것으로 판단된다.

장승이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음은 이 국장생의 예로써 확인 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가운데 사하동은 바로 국장생이나 황장생을 하나의 경계표로 보았다는 증거이다. 이 국장생은 현존하는 장승 가운데 초기형태라는 점과 장승의 출현이 사찰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는 장승연구의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1986도지정문 화재조사보고서 1(전라남도, 1986)
남녘의 벅수(이종철, 김향문화재단, 1990)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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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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