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李建英)
(金燦熙), 임직순(任直淳), 김기택(金基澤) 등과 함께 순수미술인 단체인 인천미술동인회를 조직하고, 1948년 이석호(李碩鎬), 김기창(金基昶), 정종여(鄭鍾汝), 이팔찬(李八燦), 조중현(趙重顯), 박래현(趙重顯) 등과 함께 동양화연구소를 개설하였다. 같은 해 김기창, 정종여, 박래현 등과 ‘동양화7인전’을 개최하였고 1949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1950년에는 김은호, 이응노(李應魯), 장우성(張遇聖) 등과 ‘신작두방전(新作斗方展)’을 개최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 서울미술제작소에서 활동하다 국군에 체포되었고, 1953년 월북하여 건축미술제작소 미술가로 활동하였다. 「서두수강의 봄」(1955), 「고마워라 우리 주권」(1957), 「꽃봉오리」(1958), 「대극장 면막 원화」(1960) 이후의 작품 활동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