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선(李益烍)
과거에 급제한 이후 1763년(영조 39)에 시강원 설서가 되고, 1763년(영조 41)에는 정언, 1769년에는 지평이 되었으나 조참(朝參: 왕의 친림 하에 조신들이 한 달에 네 번 찾아 뵈는 일)에 늦었다는 이유로 이양수(李養遂)·정창순(鄭昌順)·심관지(沈觀之) 등과 함께 북관(北關)에 유배되었다가 곧바로 풀려났다. 1770년에는 다시 지평이 되었고, 다음해 부교리 재임시에 사간 이적보(李迪輔)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1771년에는 수찬이 되었으며, 그 해 삼사에서 합계하여 여선형(呂善亨)과 은언군(恩彦君)을 왕법으로 다스릴 것을 청할 때는 정언으로서 합계에 참여했다. 이후 10년 이상 동안 조정을 떠났다가 1783년(정조 7)에 대사간으로 기용되어, 1784년에서 1787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사간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