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군(楚山郡)
그러나 『세종실록』 지리지·『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이산부여지도』 등에서는 이산군의 별호가 초산이라 하여 그 이전부터 초산이라는 명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별호가 언제부터, 그리고 무슨 뜻에서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759년(영조 35) 18개 면으로 구성되었고, 호수는 1만 2232호, 인구는 4만 8822명이었다. [근 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5월 지방관제가 개편되면서 초산군으로 바뀌어 강계부에 속하였다가 다음해에 다시 지방관제가 13도제로 개편되자 평안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7년 5월에는 22개 면으로 호수는 4,856호, 인구는 2만 2391명이었는데, 이렇게 격감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뒤 1935년 호수 1만 4293호, 인구 8만 1437명으로 다시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으며, 초산면·동면...